풍속생활연구 - 파리생활정경 제3권
〈랑제 공작부인(La Duchesse de Langeais)〉은 1833년 4월에 〈도끼에 손대지 마시오(Ne touchez pas la hache)〉라는 제목으로 1부가 발표된 후 1834년 2월에 최종 완성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카스트리(Castries) 후작부인과의 사랑이 좌절된 후 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서 깊은 가문의 후손으로, 아름답고 총명하며 생 제르맹(Saint-Germain)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카스트리 후작부인은 1831년 9월에 〈결혼 생리학〉과 〈나귀 가죽〉의 성공으로 사교계에서 인기 있는 작가가 되어 있던 발자크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냈다. 몇 달 후에는 신분을 밝히고 생 제르맹 구역의 저택에 발자크를 초대하기도 했다. 1832년 8월에 부인은 엑스레뱅(Aix-les-Bains)으로 발자크를 초대했다. 그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후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갈 예정이었다. 엑스레뱅에서 발자크는 부인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제네바(Genève)에서의 열렬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발자크는 부인에게 거절당했다. 상처 입은 그는 1832년 10월 18일 밤늦게 제네바를 떠났다.
발자크가 카스트리 부인에 대한 복수의 미학적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것은 한스카 부인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1832년 11월에 이국 여인으로부터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대부호이자 폴란드 국왕의 후예로, 카스트리 부인 못지않은 귀족 가문 출신인 한스카 부인이 보낸 편지는 상처 입은 작가의 자존심을 위무해주었을 것이다. 한스카 부인의 등장은 발자크에게 또 다른 희망을 불러일으켰고, 덕분에 소설은 개인적인 사랑의 실패담이 아니라, 옹색하고 반동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왕정복고 당시 귀족들에 대한 비난의 기록으로 변화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귀족계급을 상징하는 여성이 되며, 그녀에 대한 비판은 귀족계급 전체를 향한다. 즉 왕정복고 당시의 귀족계급의 과오를 분석함으로써 발자크는 왕정복고 멸망의 원인을 밝혀내고자 했다.
〈도끼에 손대지 마시오〉의 1부는 정통왕당파 월간지 《젊은 프랑스의 메아리》 1833년 4월호에 실렸다. 1부에서는 1823년 프랑스의 스페인 원정과 더불어 프랑스 장군이 스페인의 카르멜회 수도원에서 옛 애인을 만나는 장면이 전개된다. 2부의 초반부는 한 달 후 발간된 5월호에 실렸다. 그런데 1부에서 암시한 바 있는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사랑 이야기는 없고 정치적 담론이 한없이 길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왕정복고 시절 귀족들의 과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일관하는 작가의 정치 담론은 《젊은 프랑스의 메아리》 독자인 왕당파 지지자들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편집부는 발자크에게 내용을 수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발자크는 거부했다. 그 결과,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 소설을 마친 것은 1834년 3월이었지만, 소설 말미에 소설의 최종 완료 날짜와 장소를 쓰는 부분에서 발자크는 카스트리 후작부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스카 부인과 육체적 결합을 한 ‘잊을 수 없는 그날’인 ‘1834년 1월 26일’의 날짜를 표기했다.
지중해 연안 스페인의 한 섬에 위치한 어느 작은 도시에 카르멜회(Carmélites) 수도원이 있었다. 이 수도원에서는 그 유명한 성 테레사(Thérésa) 수녀가 제창한 수도회 규칙이 개혁 당시 그대로 엄격히 지켜지고 있었다. 수녀의 삶에 요구되는 속세와의 완벽한 단절을 위해 이보다 더 적합한 수도원은 없었다. 수녀원은 마을 끝, 바위 꼭대기에 세워져 있었다. 암면의 모든 모서리는 날카롭게 각이 져 있고, 해수면 높이에서 몰아치는 파도에 침식되어 있어, 그 절벽을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 바위는 멀리까지 뻗은 위험한 암초들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어떠한 공격에도 끄떡없었다.
페르난도 7세(Ferdinand VII)가 왕권을 되찾도록 돕기 위해 프랑스군이 스페인으로 군대를 파견했을 때의 일이다. 카디스(Cadix)를 점령한 후, 왕정이 다시 들어섰음을 알리기 위해 프랑스 장군 한 사람이 이 섬으로 왔다. 아르망 드 몽리보(Armand de Montriveau) 장군은 어떻게든 수도원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스페인 전역에서 아직 탐색해보지 않은 유일한 수도원이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수도원에서 왕정복고에 대한 감사 미사가 열렸다. 장군은 그 미사에 참석했다. 감사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수녀의 감동적인 오르간 연주가 이어졌다. 수녀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장군은 그 수녀가 분명 그가 지난 5년 동안 13인회를 동원해 전 세계를 뒤지며 찾아왔던 바로 그 여인이라고 확신했다. 장군은 화산이 폭발하듯 격한 사랑의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 다음 날 미사에서 장군은 지척에서 그 수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틀림없었다.
장군은 시장을 통해 수도원의 고해신부를 만났다. 고해신부는 성당의 미사 음악을 주관하시는 테레즈(Thérèse) 수녀님이 프랑스 분이라고 알려준다. 장군은 동포로서 부르봉 왕가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기 위해 그 수녀님을 꼭 만나 뵙고 싶다고 청한다. 고해신부는 원래는 그 누구와의 면회도 불가능하지만, 왕실과 신성한 종교를 구해주신 장군이시니 저녁 미사 전에 면회실에서 원장수녀님 입회하에 철책을 사이에 두고 접견할 수 있도록 원장수녀의 허락을 얻어준다.
면회실의 고요함 속에서 휘장이 열리고 원장수녀와 테레즈 수녀가 나타났다. 일찍이 파리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던 그녀였건만, 연한 갈색 법의로 온통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원장수녀의 엄중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원장수녀에게 장군이 그녀의 오라비라고 거짓말을 한다. 원장수녀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다. 덕분에 장군은 그녀에게 진심을 토로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오 년 동안 그녀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며, 그녀를 진정 사랑하며 그녀는 그의 삶의 전부이니 주저 없이 그와 함께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간곡히 애원한다. 그녀는 하느님을 모독하지 마시라며 단호하게 거절하면서도 몹시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장군이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자 그녀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원장수녀에게 실은 장군이 연인이라고 고백한다. 곧바로 휘장이 내려지고 안쪽 문이 거칠게 닫혀버린다. 망연자실한 채 서 있던 장군은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확신하고, 어떻게든 이곳에서 그녀를 빼내야 한다고 결심하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오 년 전, 귀족들의 호화로운 대저택이 밀집된 지역인 생 제르맹 구역에, “탁월하지만 나약하고, 위대하면서도 하찮은, 말하자면 귀족계급의 특징을 완벽히 지닌”, 귀족 계급의 전형으로 간주되던 젊은 여인이 있었다. 관습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불사할 그녀는 화려함과 축제를 좋아하고 심사숙고하는 법이 없는 전형적인 파리 여인으로, 귀족 가문의 보호 아래 사교계에 군림하고 있었다. 왕정복고 체제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1816년 당시 랑제(Langeais) 공작부인은 랑제 공작과 결혼한 지 사 년이 넘은 상태였다. 부르봉 왕가에 충성을 다했던 남편이 어느 사단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파리를 떠났다. 대공비를 수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공작부인은 남편을 따라갈 수 없는 처지였기에 공작 부부는 세상 사람들 모르게 몸도 마음도 완전히 별거를 유지하게 되었다.
당시 귀족 가문은 궁정의 높은 지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궁정 예법을 지켜야만 했으며, 자유주의자들로부터는 명예와 부를 다 거머쥐고 있다는 비난과 조소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재산은 전혀 불어나지 않았고 왕실에서 내리는 하사금은 그들의 체면 유지비로도 넉넉지 않았다. 여기서 발자크는 귀족 계급의 특권을 인정한다. 다만, “제아무리 고귀한 혈통의 귀족이라 할지라도 민중이 그들에게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러한 특권은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특권을 양도 받은 자는 군주에 대한 의무를 수행해야만 하는데, 오늘날의 군주는 민중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과거엔 기사들이 갑옷을 입고 창을 휘두르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통찰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술, 과학, 그리고 돈이야말로 사회를 구성하는 삼각형이며, 그 안에 권력의 방패가 놓여 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현대적 의미의 귀족이 생겨난다.” 그러나, 당시엔 특권계습의 사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적인 풍조가 팽배해, 결국엔 다른 계급의 충성심마저 잃어버리고 한없이 나약해져버린 귀족들은 통제력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들은 귀족 가문 전체를 생각지 않고 자기 집안만을 생각했다. 본디 그들에게는 분명 귀족적인 품위와 훌륭한 전통과 예절 같은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가치가 존재했었건만, 이제 그들에게는 내면적 가치는 사라지고 허울뿐인 명목상의 가치만 남아 권력에 집착하고 재산 축적에만 탐욕스러웠다. 이미 과두정치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당시 정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귀족정치를 원했다. “다시 국민의 마음을 사고 위대한 과두정치 체제를 창건하기 위해 생 제르맹 귀족들은 동료들 중 나폴레옹 같은 보물을 찾으려고 열심히 사방을 뒤져보았어야 했다.” 동료들 중 그런 사람이 없다면 어느 계급에서건 그런 인물을 찾아내어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 대귀족들은 지나치게 배타적이었기에, 결국 생 제르맹은 공공 이익에 대한 개념은 잃어버린 채 예절이나 관습에만 연연하는 늙어빠진 모습이 되어버렸다.
왕정복고 체제하에서 생 제르맹 구역 여성들은 옛날 궁정 여인들처럼 윤리적 일탈 행위에 대해 오만하고 대담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고, 겸손의 미덕도 보이지 않았다. 요컨대 그녀들은 경박하지도, 근엄하지도 못했다. 그녀들은 오래된 예절과 관습에만 집착하느라 온통 거짓과 위선뿐이었고, 억지로 독실한 신자가 되어 모든 것을 숨기고 자신들의 향락과 적당히 타협했다.
랑제 공작부인 역시 이러한 흐름에 따라 쾌락을 추구했다. 그즈음 궁정과 생 제르맹 구역은 그때까지의 무기력하고 신중했던 상태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전대미문의 화려함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을 마음껏 우롱하면서 그들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애타게 하고, 온갖 찬사를 다 받은 후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사교계에서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사라지고 마는 일시적인 열정에 공허함을 느꼈다. 어느 순간 그녀는 오로지 연인만이 자신의 완벽한 자질을 증명해주는 지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저녁 무도회에서 그녀는 처음 보는 어떤 사내를 발견했다. 대범하고 근엄한 표정의 그는 몽리보 후작이었다. 파리는 주기적으로 인위적인 열정에 사로잡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교계의 총아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 무렵 파리는 바로 몽리보 후작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는 포병대 대대장으로, 모든 면에서 정확하고 엄밀했으며 그 어떤 위선적인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 성품인데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대담한 기질로 인해 북이집트와 아프리카 미지의 땅을 탐험하러 떠났다가 아프리카 부족에게 붙들려 노예 생활을 하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한 흥미로운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와 친분이 있었던 군인들을 통해 그의 진정한 가치와 그가 체험한 모험이 사교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일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왕정이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유능한 인재를 물색하던 와중이라 그는 군의 지휘관으로 복권되어 그때까지 밀렸던 봉급을 받아 근위대에 배치된 덕에 재산까지 풍족해졌다. 이러한 그이기에, 대부분 진부하기 짝이 없는 사교계 다른 사내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에게는 어딘지 남다르고 위대한 점이 있었다.
그의 외모와 인물됨에 강한 인상을 받은 공작부인은 그를 정복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간파하고 그에게 온갖 교태를 부려 그의 마음을 기어이 얻어내고야 만다. 랑제 공작부인은 매력적인 미모와 품행, 말투가 어우러져 요염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다가, 애교와 교태를 부리는 데 필요한 자질을 타고났다. 그녀는 때에 따라 경계심 없이 대해주다가 교활해지기도 하고, 감동적일 만큼 다정하다가는 가슴을 얼어붙게 할 만큼 냉혹해지기도 했다. 한 마디로,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상대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고급 창부의 기질이 내면에 숨겨져 있었다.
그날부터 몽리보는 매일 저녁 공작부인의 집을 방문한다. 첫사랑의 열기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랐던 몽리보는 욕망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제 그에게 공작부인은 이 세상 모두이자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신앙심을 앞세워 그가 원하는 쾌락은 죄악이고, 죄악에는 대가가 따른다며,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그녀의 모든 명예와 미래를 요구하는 그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녀는 일단 그의 사랑이 얼마나 열렬한지 확인하고 나서부터는 심술궂게도 그것을 마음껏 즐기며, 때로는 냉혹하게 굴고 신경질을 내는 등 고약하게 굴다가도, 때로는 천사같이 온화하고 온갖 애교를 부려대며 그를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조금씩 밀어 넣었다. 그녀는 두 사람만의 밀회가 과도하게 뜨거워질 듯하면, 바로 그 순간에 거실로 뛰어나가 피아노를 치거나 황급히 하인을 부르는 식으로 분위기를 환기해버리곤 했다. “부인의 변덕스러운 장난의 희생자가 된 몽리보는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었음에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공작부인이 가는 곳마다 예외 없이 몽리보가 등장했기에 사교계에도 그를 공작부인의 찬미자 중 하나로 여겼다. 이렇듯 공작부인은 정절에 관한 자신의 평판은 확고히 한 채로 몽리보의 지고지순한 숭배를 받는 여인으로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그녀가 목적한 바 그대로였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랑의 속삭임과, 목숨을 건 사랑의 맹세와, 사소한 사랑싸움을 반복하며, 철저한 그녀의 계산 아래 애정 표현의 수위가 제한된 채로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몽리보는 회합을 마치고 롱크롤(Ronquerolles) 후작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롱크롤 후작은 몽리보에게 공작부인처럼 배은망덕한 여자에게 목매여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 제르맹 구역 여자들은 늘 사랑에 빠져 살고 싶어 하는데, 다만 소유당하지 않은 채 남자를 소유하려 하기에, 교리에 어긋나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쾌락을 즐길 뿐이다. 롱크롤은 몽리보에게 당장이라도 랑제 공작부인에게 달려가 어디 한 번 무례할 정도로 대담하게 육체를 요구해보라고, 그러면 아마도 당장 그녀의 경멸을 받으며 규방에서 내처지고 버림받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그러면서, 정녕 그녀를 원한다면 그도 그녀만큼 냉혹해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몽리보는 곧장 공작부인의 집으로 달려가 하인이 그가 왔다고 알리기도 전에 부인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이제는 자신의 여자가 되어달라고 열렬하게 간청한다. 공작부인은 그를 힘껏 밀어내면서 자신의 명예를 지켜달라며 그를 경멸한다. 얼굴이 창백해진 몽리보가 다시금 그녀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공작부인은 종을 울려 하녀를 불러 그를 내보내버린다. 차갑고 예리한 그녀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낀 그의 마음에는 고통으로 빚어진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수많은 남자를 농락했을 거라는 걸 순식간에 깨달았다. 그는 모든 남자를 대신해 복수를 결심한다.
그 후 일주일 동안 몽리보는 공작부인의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채 간절하게 그를 기다렸다. 어느 무도회에서 몽리보는 부인들과 환담을 나누는 척하며 공작부인을 매서운 시선으로 응시한 채 영국 왕 찰스 1세의 일화를 들려준다. 복면을 한 사내가 왕의 목을 내리치는 순간에 왕이 어느 구경꾼에게 “도끼에 손대지 마시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이다. 공작부인은 등골이 오싹해진다. 바로 그때 몽리보는 공작부인에게 오늘이 가기 전에 무서운 불행이 닥칠 거라고 경고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공작부인은 서둘러 무도회장을 빠져나가 마차에 오른다. 마차가 멈추고, 무심코 마차에서 내려 현관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문득 낯선 곳임을 깨닫는 순간에 몇 명의 사내가 순식간에 그녀를 덮쳐 손발을 묶어 들어올린다. 그녀가 운반된 곳에는 몽리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작부인은 몽리보를 보자 재빨리 예의 거만함을 되찾고 그를 질책한다. 그러나 몽리보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다. 사랑으로 빛나던 그의 눈빛은 무섭도록 차분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몽리보는 그녀에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한 사내의 사랑을 농락해 그에게서 행복한 미래를 빼앗아 그를 영원히 죽여 버린 죄를 묻는다. 강인하지만 순진한 사람을 상대로 온갖 교태를 부리며 그에게 수많은 희생을 요구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그 어떤 희생도 거부했던 중죄를 오늘 벌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육체는 드리지 못했지만 마음은 전부 다 드렸다고, 그가 바로 그녀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간절하게 외친다. 그러나 몽리보는 이제 더 이상 과거는 없다고 일축하고는 그녀를 단죄하기 위해 그녀의 이마 한가운데 도형수들처럼 십자가 자국을 낼 거라고 예고한다. 그가 말하는 동안 옆방에서는 서너 명의 사내들이 십자가를 달구고 있었다. 공작부인은 달게 받겠다며 순순히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마음이 약해진 몽리보는 그녀를 그냥 돌려보낸다.
이를 계기로 공작부인은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뜬다. 지금까지 그녀는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정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그녀는 몽리보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에 밤새도록 몸을 뒤척인다. 내면의 사랑을 깨달은 그녀는 한없는 행복을 느끼며 또 다시 몽리보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오지 않았고, 그가 나타날 만한 무도회를 모조리 다 방문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그에게 편지를 써서 하인 편에 보내보지만, 그는 답장을 보내지도, 그녀를 방문하지도 않았다. 매일 밤 그를 맞을 채비를 하느라 한껏 몸치장을 하고, 극도의 흥분 속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결국 그가 나타나지 않아 절망하는 날들이 이어지며 그녀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급기야 그녀는 먼저 그를 방문하기로 결심한다. 이는 당시엔 공개적인 사랑고백으로 간주되어 여인의 평판을 해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랑제 공작부인은 자신의 마차와 하인을 몽리보의 집으로 보내 아침부터 오후까지 문 앞에 머물게 한다. 그러자 삽시간에 소문이 퍼지고, 공작부인의 파멸을 염려한 친척들과 대공비가 그녀의 집으로 몰려온다. 대공비는 공작부인에게 스캔들 때문에 랑제 공작에게 무일푼으로 쫓겨날까 두렵다며, 재산과 가문과 작위와 궁정에서의 지위를 가진 귀족부인이 그 모든 걸 내던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몽리보를 마음껏 좋아하되 관습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행복을 추구해 명예만은 지켜야 한다고 타이른다.
이틀 후 공작부인은 몽리보의 하인을 매수해 밤 여덟 시에 그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없었다. 탁자 위에는 지금껏 그녀가 보냈던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편지를 하나도 읽지 않았던 것이다. 절망에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무도 들이지 않고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날 재산관리인과 주교 대리를 불러오게 한다. 그녀는 주교 대리에게 자신의 편지를 건네며 지금 몽리보를 만나 이 편지를 전한 뒤, 오늘 저녁에 다시 그를 만나러 가서 자신을 만나러 와달라고 전해달라고 청한다. 만일 세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가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그대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작정이었다.
마지막을 호소하는 눈물어린 그녀의 편지가 몽리보에게 전해지고, 그날 저녁 공작부인은 주교 대리와 함께 몽리보의 집을 방문한다. 몽리보는 출타 중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주교 대리를 먼저 보내고, 혼자서 몽리보의 집 문 입구에 선 채 세 시간을 기다린다. 끝내 몽리보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난다. 그날따라 늦어진 회합을 끝내고 몽리보가 서둘러 집에 도착했을 때는 싸늘한 분노에 사로잡힌 그녀가 마차도 타지 않은 채 걸어서 파리를 떠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집 문지기에게서 공작부인이 내내 하염없이 울면서 기다리다 가셨다는 말을 듣고 몽리보는 얼굴이 하얘졌다. 그는 롱크롤과 함께 13인회를 움직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틀림없이 수도원에 은거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한 그는 전 세계의 수도원을 모두 뒤지기로 결심하고 오 년을 찾아 헤매왔던 것이다.
몽리보가 이끄는 범선이 수도원의 암초 부근에 닻을 내린다. 그를 포함한 13인회는 정면 돌파를 택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암초들 위로 쇠밧줄과 운반기 장치를 연결해 열하루 만에 수도원 암벽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다시 그곳에서 바위 꼭대기까지 계단을 설치해 오르는 데 이십이 일이나 소요된다. 이윽고 바위 꼭대기에 이른 그들은 달이 질 때를 기다렸다가 담벼락을 기어오른다. 준비한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넘어 수도원 묘지로 들어간 몽리보는 지난번에 수녀가 된 그녀를 만났을 때 기억해둔 면회실 창문의 쇠창살을 두 시간 만에 잘라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방문에 붙은 수녀들의 이름을 확인하여 그녀의 방을 찾아낸다. 그들이 서둘러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이미 시체로 변한 랑제 공작부인을 보았다. 그 누구도 아무 말고 할 수 없고, 아무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이때, 장례 미사를 시작하려 수녀들의 행렬이 다가온다. 그들은 재빨리 그녀의 유해를 면회실 창문을 통해 운반한다. 그리하여 원장수녀가 수녀들을 거느리고 테레즈 수녀의 유해를 가지러 왔을 때는 이미 그녀의 시신이 수도원 담벼락 밑으로 운반되고 난 후였다. 몽리보는 그녀의 시신을 앞에 두고 홀로 선실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숭고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사랑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잡지 연재가 중단될 만큼 편집부를 불편하게 했던 발자크의 정치관은 파리 지역의 시대별 변천사와 더불어 파리 한가운데 있는 생 제르맹 구역의 고립성을 언급한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귀족들은 언제나 인구밀도가 높은 곳을 피해왔다. 이러한 공간적 구별은 귀족과 민중 사이의 “정신적 격차를 물질적으로 공고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귀족들의 이러한 특권은 정당하다. 어떤 집단에서도 계급은 형성되며, 따라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사회가 필연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면, 질서 유지를 위해 탁월한 사람들이 힘과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 따라서 프랑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는 “태어나기 전부터” 부와 여유를 가졌을 뿐 아니라 최고의 교육까지 받아 고양된 정신과 재능을 가진 탁월한 자의 통치가 필요하다.
이처럼 발자크는 귀족들에게 우월성을 부여하고 소유권에 기초한 특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여기서 발자크가 강조하는 것은 민중의 힘이다. 귀족들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중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삶은 진보하고 정치가 추구해야 할 가치도 변화한다. 따라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치적 이념도 달라져야 한다. 발자크에게 새로운 정치란 사태의 흐름을 파악하고 시기적절하게 ‘사상의 옷을 갈아입을 줄 아는’ 정치다. 그리고 이때 요구되는 것은 능력 있는 자라면 누구나 계급상승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사회제도이다. 예술과 과학과 돈의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새로운 귀족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왕정복고시대의 생 제르맹 귀족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보하지 않고 과거에만 매달린 채 자만심에 빠져 있었기에 7월 혁명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발자크의 정치관은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공작부인과 몽리보 후작의 대립된 세계관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랑제 공작부인은 멸망해가는 생 제르맹 구역을 상징한다. 그녀는 “탁월하지만 나약하고, 위대하면서도 하찮은, 말하자면 귀족계급의 특징을 완벽히 지니고 얼마 동안 그 계급의 전형으로 간주되던” 여인이다. 그녀의 핵심적 문제는 교태와 위선과 가장에 있다. 그러나 랑제 공작부인의 교태에는 왕정복고시대의 보편적이 정신이 담겨 있고, 따라서 그것은 개인적인 과오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계급적인 과오가 된다. 공작부인의 교태는 귀족들의 잘못된 보수성을 비난하기 위한 하나의 메타포다.
이에 반해 몽리보 후작은 혁명과 제국의 아들이다. 그는 강인하고 용맹하고 정력이 넘치는 “나폴레옹의 군인”이었을 뿐 아니라 과학적 탐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아프리카를 탐험한 바 있는 용기 있는 사내였기에, 당시 파리의 살롱을 장식하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얼치기 청년들과 확연히 구분되면서 사교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사교계에서 공허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공작부인에게 그를 유혹하는 것은 권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멋진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작부인과 몽리보의 거리는 생 제르맹 귀족과 나폴레옹 제국 군인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어서 두 사람은 절대 하나가 되지 못한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우선 사랑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확인된다. 몽리보에게는 오로지 육체적 결합만이 사랑의 증거인 반면, 공작부인에게 그것은 ‘저속한 욕망’에 불과하다. 따라서 공작부인은 육체적 정절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결심 하에 사랑의 사전 단계에 머물면서 그 상태를 즐기는 반면, 몽리보 장군에게 사랑은 정복을 위한 전쟁이다. 첫 만남부터 그는 반드시 그녀를 자기 여자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에게는 그 생각만이 사랑에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차이는 종교와 정치에 대한 논쟁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공작부인은 혁명을 부정하면서 정치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몽리보는 부인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혁명 정신을 존중하지 않는 생 제르맹 귀족들의 오류를 비판한다. 공작부인이 지적하듯 그들은 정치적으로 같은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생 제르맹 귀족들의 눈에 몽리보의 정치적 사상은 ‘아주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강력한 통치를 위해 종교를 이용해야 한다는 공작부인의 주장이나 혁명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몽리보의 주장은 모두 발자크의 정치관을 대변하고 있다. 요컨대, 보수주의적 성향과 더불어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공존하고 있어,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결국, 발자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체제는 소수의 인물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과두정치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정치이념을 밝히는 모든 글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이다. 발자크는 과두정치를 실현할 정치가로 필시 나폴레옹 같은 인물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그가 속해 있던 정통왕당파 귀족들에게 나폴레옹은 입에 담아서도 안 되는 일종의 금기였던 만큼 발자크의 나폴레옹 찬양에 그들의 심기가 불편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발자크는 1830년 이후 정통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자유주의자였던 만큼 발자크가 정통주의로 전향했더라도 그의 사상은 보수주의 왕당파들의 사상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그가 원했던 것은 나폴레옹 같은 위대한 군주가 통치하는 강력한 군주제이지, 부르봉 왕가의 부활은 아닌 것이다.
▶ 발췌 문헌 : 〈13인당 이야기〉, 발자크 저, 송기정 역, 문학동네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문헌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하거나 발췌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역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