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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un 13. 2024

이불 빨래는 이제 그만

잠꼬대 2


 

옷 빨래를 서랍에 넣어 주려고 들어 간 셋째 딸의 방에는 오늘도 이불이 침대 밑으로 내려와 있다.

침대를 내려오면서 이불로 미끄럼이라도 타는 건지 매일 이 모양이다.

자고 일어나 이불 정리만 잘해줘도 좋을 텐데 아직은 무리인가 보다.

그런들 어떤가? 4학년 때처럼 자주 이불 빨래를 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데...

내가 잠시 편해져서 잊고 있던 시간 속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불 빨래를 해야 했던 날도 있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셋째는 혈액형도 아빠와 똑같더니 잠버릇 독특한 것까지 닮아서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었다.


특이한 잠꼬대는 셋째 딸이 4학년이던 어느 날부터 시작되었다.

일찍 일어나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려던 내 눈에 이불 빨래가 들어왔다.

빨래 바구니에 동그랗게 뭉쳐 있는 이불은 분명 우리 집 막내딸이 어젯밤에 덮고 잤던 이불이었다.

다 큰애가 실수를 했을 리도 없는데 이상했다.

사이에 이불에 발이 달려 스스로 걸어 들어갔을 리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불을 꺼내 축축한 곳이 있는지 만져 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일어났다.

게다가 자고 일어난 막내는 자신의 이불이 왜 거기 있는 건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모르는 일을 가지고 야단을 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족들도 모두 모르는 일이라고 하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만 범인은 곧 밝혀졌다.

물 마시러 나오던 내가 어둠 속에서 이불을 안고 나오는 셋째 딸 마주친 것이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딸은 그 걸 가지고 어디로 가는 거냐는 나의 물음에 대답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세탁 바구니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셋째 쫓아가며 들고 있던 이불을 앗으려고 해 보았다.  

러자 절대 뺏기지 않으려는 듯 이불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자기 쪽으로 더 세게 끌어당겼다.

어쩌다 보니 우리 집 거실에서는 한 밤중에 엄마와 딸의 이상한 힘겨루기 한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이런 일로 다시 세탁한 이불이었기에 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엄마는 지금 진지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짧지만 강하게 이름을 불렀다.

역시나 소리에 반응했다.

하지만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억지 부리며 이불을 절대 놓지 않는 셋째는 아직 꿈속에 있었다. 

'오늘 꿈 한 번 실감 나게 꾸는구나.'

나는 손에 힘을 빼고 세탁 바구니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듯 앞장서 갔다.

그리고 세탁 바구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 딸아이가 내려놓는 이불을 곱게 받아안았다. 

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제 방으로 돌아가 누웠다.

나도 따라가 어렵게 지켜낸 이불을 곱게 덮어주었다.

'그래, 오늘은 가 이겼다.'


아침이 되  전날 밤 일을 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셋째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이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 손사래를 쳤다.

셋째의 잠버릇에 가족들은 다 함께 웃었고, 나는 딸에게 꿈속이라도 이불 빨래는 내놓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또다시 웃었다.


엄마가 부탁했다고 조절이 가능하다면 그게 과연 잠꼬대일까?

셋째는 그 뒤로 한 번 더 꿈속에서 이불을 안고 제 방을 나왔다.

딸과 나는 늦은 시간까지 TV를 보다가 은 상황에 '엄마, 지금 쟤 이불 또 내놓으려고 그러는 맞죠?' 하는 표정으로 나와 짧은 웃음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번엔 주방 싱크대에 넣으려고 다.

 딸은 엄마와 동생이 이불을 서로 가져가겠다고 힘을 겨루듯 잡아당기는 상황을 지켜보며 눈물까지 닦아내며 웃었다.

나 또한 이불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당기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결국 셋째는 웃음소리에 놀라 그렇게 서 있는 상태로 잠에서 깼다. 자신이 안고 있던 이불과 우리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그제야 상황을 인식하고 멋쩍게 웃었다.

"아, 내가 왜 그랬죠? 정말이었다니."

"그래, 이제 이불 빨래는 좀 그만 내놔라!"


이 일이 있고 나서는 더 이상 이불을 내놓지 않는다.

아마도 잠에서 깨었을 때 자신도 깜짝 놀라더니 무의식에 주문을 했나 보다.

편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 새삼 만족스러워진 나는 셋째 딸의 방을 나오며 다시 한번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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