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Jun 11. 2024

아기가 사라졌어요

잠꼬대 1



오늘은 이미 <님아, 그 못을 뽑지 마오> 편에서 룬 적이 있는 남편의 잠꼬대에 관한 일화 중 내가, 또 우리 가족이 최고로 꼽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내게는 생각만 해도 그 순간에 가 있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는 이야기이다.


첫  딸아이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여름날 밤의 일이다.

시골집에서 바닥 생활을 했던 때였다. 아기 침대는 따로 두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귀가 밝은 편인 데다 모성애까지 더해져 아기의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빛의 속도로 반응다.


잠자리의 위치는  내 왼쪽에는 남편을, 오른편에는 아기를 재웠다. 그날도 모두가 그렇게 잠들었다.

아기는 모기에 물리지 않게 원터치 모기장으로 안전장치도 해두었고, 육아에 지쳤던 나도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이 들고 얼마 되지 않아 어둠 속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덜 깬 탓에 정신은 없었지만 눈은 본능적으로 아기를 향했다.


맙소사, 잘 자고 있던 아기가 리에 없었다.

게다가 아기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어야 할 모기장도 방문 앞까지 날아가 있었다. 

신생아가 기어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기는 정말 상상도 못 할 곳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아기는 남편의 머리 밑에 깔려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이 잘 자고 있던 아기를 끌어다 자신의 머리 밑에 끼워 넣은 거였다.

아기는 끙끙거리는 작은 소리로 자신의 위험을 알리고 있었고, 놀랍게도 아기를 베개로 착각한 남편은 잠자리가 불편했던지 양손을 사용하여 베개를 정돈 중이다.

아기를 베개처럼 사용하려니 불편하셨을 테지!

누에고치 모양으로 잘 감싸 재웠던 아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울음을 터트리려 하고 있었다.


위험에 처한 아기를 보니 내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망설임 없이 남편의 머리를 재빠르게 밀어내고 아기를 빼냈다.

깜짝 놀란 남편도 바로 일어나 앉았다.

나는 방금 전 일어난 상황을 말해주며 아기를 꼭 끌어안았다. 남편도 죄책감이 드는지 울상을 지으며 자신이 왜 그랬을까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잠꼬대라는 것을 알았어도 정말 미웠던 순간이다.


아빠 머리 밑에서 풀려난 아기는 곧 다시 잠들었다.

다행히 몇 초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인 듯했다.


태어나 처음, 엄청난 무게에 놀랐을 아기는 그때 아빠가  미안하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까? 

그러고 나서 아빠도 곧 잠들었다는 것도!!!

금세 평화가 왔지만 나 홀로 다시 잠들지 못했던 이 참 길었던 날이었다.


아빠 머리에 눌렸던 세계 최초의 아기였을 큰 딸은 다시는 그런 고난 없이 곱게 잘 커서 지금도 그 이야기만 꺼내면 좋다고 웃는다.


그런 딸이 예뻐서 나도 웃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우기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한 사람이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집 유일한 남자 사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