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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유니 Jun 28. 2023

두 번째 시련,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내 인생의 두번째 시련 

“301호 산모님 호출입니다!” 

맑은 하늘에 벼락이 칠 것만 같은 날이었다.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이 이어질 거로 생각했는데 두 번째 시련이 닥쳤다.     

‘인제 조금 행복해도 될 거 같은데…….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산부인과에서 4박 5일 동안 입원한 후 산후조리원에 입소해 회복하고 있을 때였다. 남편도 첫 아이라 긴장한 탓인지 평소보다 더 많이 잤다. 아니면 오랜만에 쉬니 맘 놓고 쉬는 걸 수도 있었다. 산후조리원 천국을 꿈꾸며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산후조리원 팀장님께서 급히 나를 호출하셨다.

     

“산모님, 말씀드리기 전에 놀라지 마시고요. 저희가 확인이 안 돼서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주세요.”

“네. 무슨 일인가요?”

“아이가 피검사에서 자꾸 fail이 나옵니다. 산모님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저희가 임의로 아이 몸 상태 살펴 가면서 검사를 세 번에 걸쳐서 했는데요. 여전히 fail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선천성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어요.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의뢰서를 작성해서 대학병원으로 가도록 해 드릴 거예요. 산모님 지금 몸살 기운도 있고 몸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5일 정도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몸을 좀 편하게 쉬시고요. 그 이후 아이와 함께 대학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우리 아기 많이 아픈가요? 큰일 난 건가요?”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니 마음을 차분히 하세요.”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후조리원 천국은커녕 지옥과 천국을 오가며 하루에도 수십 번 웃었다 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다른 산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도 떨고 산후조리원 모임을 하자는 둥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힘내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자고 생각하며 산후조리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모두 참석했다. 요가도 하고, 바느질도 하고, 이것저것 다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남편이 잠들고 아이도 곤히 잠든 깊은 밤이면 나 혼자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2주일 산후조리원에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될 거 같아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조처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짐을 정리하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보니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다. 그동안 걱정하고 불안한 마음을 계속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몸살 기운이 좋아지지 않았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지쳐서 그냥 산후조리원에서 더 쉬고 싶었다.      


갑자기 부모님이 야속했다. 딸이 첫 아이를 낳았는데 식당이 바쁘다는 이유로 올라와 보지도 않으셨다. 물론 걱정하시는 마음에 전화도 하고 이모님을 대신 보내 나를 챙기라고 해서 이모가 오시기는 했다. 그 시기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이 워낙 잘되어서 바쁘신 거는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마음속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또 한 번 부모님이 미웠다.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남편의 휴가는 2주일뿐이라 나와 아이만 병실에 남았다. 아이가 진료를 봐야 해서 산부인과가 아닌 소아청소년과 6인실에 배정되었다. 입원한 첫날은 피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검사 등등 검사만 네 가지 정도를 받았다. 태어난 지 15일 정도밖에 안 된 아이의 팔에 바늘이 꽂혔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입원 첫날밤이 되었다. 온종일 아이 검사에 지쳐서 좀 쉬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젖도 물지 않고 자꾸 울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는데 자꾸 우니까 도저히 병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웠지만,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아이를 품에 안고 흔들의자에 앉았다. 아이는 배가 고팠는지 젖을 물었다. 이제 젖을 먹고 나면 자겠구나 싶었는데 잠은커녕 더 많이 울었다.     


 아이를 안고 병실 복도를 하염없이 걸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고 다리도 너무 아팠다. 몸이 아픈 건 참을 수 있겠는데 잠이 쏟아지는 건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자다 깨기를 반복한 아이는 새벽 5시경이 돼서야 곤히 잠들었다. 아마 아이도 병원이 낯설어서 힘들었나 보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정신까지 멍했다. 잠시 휴게실 소파에 기대어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오전 9시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회진하셨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 잠을 자도 금세 눈이 떠졌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께서 오셨다.      


“안녕하세요.” 속마음과는 다르게 덤덤하게 인사를 드렸다. 

“아이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이의 병명은 선천성 부신과형성증입니다.”     

그 뒤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가시고 레지던트 선생님이 남아서 자세히 이야기 해주셨다.      

“보호자님의 아이는 선천성 부신과형성증입니다. 이 질환은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특별히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질환은 아닙니다. 부신피질이라는 부신에 있는 기관의 이상으로 일종의 염색체 오류(기형)입니다. 특별히 수술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은 아니고요. 평생 약을 먹고 살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정신이 혼미했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닥친 건지 실감 나질 않았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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