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미성숙한 어른이다
어려움이 많았던 유년기 시절
“엄마! 나 너무 무서워! 살려줘! 나 좀 꺼내줘!”
건물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 하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이다. 시골 중의 시골에 자리 잡은 폐허 공장의 깜깜한 방안에서 어느 아이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감옥 창살같이 생긴 창문을 쥐어뜯으며 무섭다고 울고불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울부짖는 4살짜리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서울에서 창틀 공장을 운영하시던 아빠가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사업체를 정리할 여유도 없이 우리 가족은 무일푼으로 부모님의 고향으로 이사했다. 친고모가 사시는 동네의 폐허 공장 한편에 작은 방 하나 작은 부엌 하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허락해서 우리 가족의 시골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생사를 오가며 누워만 계셨고, 오빠들은 초등학생이라 학교에 가면 오후가 돼서야 돌아왔다. 아픈 남편과 아직 어린 3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엄마는 집에 앉아 계시는 날이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다가,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엄마와 강제분리가 됐던 나는 하루종일 엄마를 찾아다니며 울었다.
오죽하면 동네에서 짤순이라고 소문이 났을까? 동네 어른들이 어르고 달래도 우니까 짤순이라는 별명을 만들어 주셨다. 동네 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미아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면 나를 알아보는 어른들이 "짤순이 많이 컸네!" 하며 반겨 주신다.
어린 나이였지만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는 새벽 3시 집을 나가서 아침이 밝아야 돌아오셨다. 그때는 엄마가 단순히 일 나가시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그때 생활고에 지쳐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삼 남매를 두고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셨단다.
그때부터 새벽 3시만 되면 일어나서 산으로 올라가 나물 캐고, 고사리를 끊으셨다고 한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고, 산나물과 고사리를 한 아름 캐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곳이 엄마의 유일한 비상구가 아니었나 싶다.
늘 고생하시는 엄마가 안쓰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엄마보다 아빠에 대한 원망이 컸다. 왜 몸 관리 제대로 하나 못해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쓰러지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화가 났다.
그 후부터 원망의 마음은 점점 커져 아빠를 늘 미워했다. 내 울음소리를 듣고도 달려오지 않는 엄마가 미웠다. 동네 분들이 다 들을 정도니, 분명 산에 있던 엄마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무시하고 하염없이 산나물, 고사리만 캤다. 나중에 여쭤보니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다고 했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더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때 무섭고 겁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기억은 바로 눈앞에서 그려지듯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학교 때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스트레스받는 날이면 여지없이 꿈속에서 4살 때로 돌아갔다.
자다 깨서 보면 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잊을 만하면 꼭 악몽을 꾸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런 꿈을 꾸지 않을까?’ 하며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걱정하실까 봐 가끔 악몽을 꾼다고 말도 못 했다.
그렇게 나는 미성숙한 아이 같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나는 남편과 결혼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참 많은 걸 경험하고 깨닫는다. 남매를 키우고 한 가정을 꾸려나가니, 그때 당시 부모님이 왜 그랬는지, 무슨 마음이었는지 짐작도 된다.
이제야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용서가 되었다. 오히려 엄마는 존경스럽고, 돌아가시지 않고 건강히 살아계시는 아빠가 고맙다. 지금은 연로하시고 중풍 후유증으로 경증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나에게 아주 가끔 전화하실 정도로 건강한편이다. 아마도 엄마의 지극한 보살핌에 하늘이 도우셨나 보다.
우리는 모두 미성숙한 한 인간이다. 한 떨기 꽃도 물과 영양분이 부족하면 시름시름 죽어간다. 집에서 키우는 화초도 지극정성으로 돌보지 않으면 어느새 잎에 병이 들고 마른다. 우리 인간이 참 강하고 위대한 거 같지만, 한 떨기 꽃과 같다.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살아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미완성된 한 사람이 또 다른 미완성 된 다른 한 사람을 만나, 또다시 미완성 된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미완성된 존재이다. 그런 존재들이 함께 비비고 어우러져 살면서 비로소 점점 완성된 어른이 된다. 작은 우주의 존재들이 모여 사는 게 사람 사는 세상 같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예뻐할 시간도 모자라다. 내일도 모래도 여전히 이대로 살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른다. 한없이 나약한 인간에게 내일 이 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