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아이 별하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이다. 이후로 행복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리고 첫 아이를 밴 10개월 동안이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임신한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내 배 속에 아이가 있다고?’ 신기하기도 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실감이 나기 시작한 건 남편이랑 산부인과에 가서 젤리 곰 같이 생긴 조그마한 아이를 초음파 화면으로 본 이후였다. 평소에 무뚝뚝하기만 한 남편도 이때만큼은 달랐다. 남편은 아이의 태명을 지어주기 위해 이리저리 정보를 뒤지고 있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짖자고 했는데 남편은 안된다고 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지어진 우리 첫 아이의 태명은 ‘별하’ 다.
* ‘별하’: 별처럼 높고 빛나게, 라는 뜻으로 순우리말이라고 알려졌지만, 순우리말이 아니다. 현재 국립국어원에서는 ‘별’ ‘하’ 는 각각 고유어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보, 잘 다녀와” “토닥토닥”
배가 불러올수록 우리 부부 사이는 날로 가까워졌다. 아침 6시가 되면 일어나서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꼭 밥상을 차렸다. 그러면 남편도 맛있게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는 늘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배웅을 했다. 남편이 출근하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날은 집안일을 마치고 조용히 앉아서 생각했다.
‘나. 지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왜 이 행복이 두려울까? 이러다 또 어느 날 갑자기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나는 좀 행복하면 안 되나? 나는 왜 행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까?’
마음이 심란하고 이상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린 나이에도 집안일을 도맡아서 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사회생활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내 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험했다. 어릴 때부터 힘들었던 경험 때문인지, 남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건지, 이상하게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별하를 임신한 동안에는 입덧이 아니라 먹덧 이었다. 끼니를 챙기는 시간에 제대로 먹지 못하면 울렁거리는 증상이 생겼다. 어릴 때 엄마가 자주 해주셨던 신선한 나물 반찬이 먹고 싶었다. 그럴 때면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곤 했다. 하지만 엄마가 해주신 그 맛이 아니라 늘 아쉬웠다. 그리고 바지락 칼국수를 2주에 한 번씩 먹었다. 배 속에 있는 별하가 먹고 싶었던 건지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남편은 바지락 칼국수가 싫었을 텐데 군말 없이 같이 먹어주었다. 아이스크림도 자주 먹고 싶었다. 특히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평소에는 너무 달아서 잘 먹지 않던 아이스크림이었다.
임신 중기가 되니 배가 제법 불렀다. 몸무게도 10㎏이나 늘었다. 배가 유독 동글게 튀어나와서 주위에선 쌍둥이를 임신했냐고 묻기도 했다. 결혼 전부터 변비 증상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임신하고 나서는 증상이 더 심해졌다. 일주일 동안 화장실을 못 간 적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병원에서 변비약을 처방받아 먹곤 했다.
30주가 넘어서니 몸무게가 20kg이 늘었다. 별하도 평균 태아들보다 컸다. 아이가 뱃속에서 너무 크면 출산할 때 힘들다고 의사 선생님이 주의하라고 했다. 몸무게도 더는 늘리면 안 된다고 했다. 산달이 다 돼가니 별하의 예상 몸무게가 3.8kg 나 되었다. 36주쯤 병원에선 지금 출산해도 무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갑자기 겁이 났다. 3kg이 넘는 아이를 자연분만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았다.
평소에는 식사 후 집에서 쉬기만 했는데 그날부터 뒷산에 올랐다. 산 초입을 지나 중턱까지 오를 때였다. 등산하다 만나는 분들이 배도 무거운데 혼자 산에 오르면 안 된다고 야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무거운 배를 움켜잡고 천천히 걸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 성공했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낮은 동산이라 괜찮았다.
“별하야, 건강하고 무탈하게 빨리 만나자! 엄마가 더 노력할게.”
산에 갔다 와서 그런지 골반 통증이 심해서 자다가 깼다. 아이가 나오려고 할 때 느껴지는 통증은 아니었다. 골반부터 다리까지 아프고 쑤셨다. 갑자기 산에 오르느라 몸에 무리가 온 거였다. 걱정되어서 아침에 병원에 갔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아직 역방향이라고 했다. 산달이 되면 아이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다. 그러면 머리가 엄마의 다리 쪽이어야 하는데 별하는 반대였다. 예상 몸무게도 4kg이 다 되어 갔다. 내 골반도 큰 편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은 자연분만이 힘들 거라고 했다. 수술 날짜를 정하자고 제안하셨지만 나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역아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움이 되는 체조를 검색해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병원에 갔다. 다행히 태아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37주 때였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아이의 발길질에 깜짝 놀랐다. 아이가 “엄마! 나 심심해! 놀아줘” 하는 거 같았다.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별하야! 아빠가 우리 별하 태명을 별하 라고 지어줬어, 별처럼 높고 빛나는 사람이 되어라. 건강하게 만나자!” 10개월 동안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는 행복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막연함 말고는 크게 힘든 일도 없었다. 행복한 10개월을 나의 아이 별하 덕분에 마음껏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