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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멘타인 Jan 04. 2019

봄눈

옆자리에 앉은 당신의 몸이 아주 천천히, 느리게 사선으로 비틀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어.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껴안았지. 누구의 팔이 위로 올라가느냐 같은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어정쩡한 자세였어. 찰나의 포근함.


그런 포옹 후에도 뭐가 아쉬웠는지 몇 초간 서로를 바라봤어. 그 눈빛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몇 없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아주 바쁜 날,

당신은 며칠 뒤 내가 있는 강릉에 오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러라고 했지. 이곳에서 만나는 일은 처음이라 약간 긴장이 됐어. 어쨌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당신을 위해 약속 장소를 잡아두겠노라고 말했어.


밀린 일이 하나 둘 끝나갈 때쯤 당신은 동해에 도착했다고 했고, 나는 서둘러 우리가 만날 장소를 찾았어. 맛집 찾는 일에 아직 미숙한 나는 지난번 누군가 맛있다고 했던 곳을 떠올렸고, 그곳의 주소를 보냈지.


다행히 처음 가본 장소는 생각보다 아늑했고 내 취향의 노래가 흘러나왔어.

약간의 어색함 속에서도 꽤나 괜찮은 출발이었지.


더 예뻐진 것 같아요.


나는 그동안 당신이 날 잊고 있어서 그런 거라고 실없는 소리를 했지.

오랜만에 본 당신은 머리가 제법 자라 있었어.

복잡한 서울에서만 봐서그런가? 이렇게 내가 사는 장소에 당신이 나타나니, 왜일까, 내가 서울에 있는 기분이었지.


며칠 전부터  바다에 푹 빠져있다 온 당신을 위해 웬만하면 바다가 아닌 장소로 이동을 하고 싶었어.

그러나 준비성이 없는 나를 질책이라도 하려는 듯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있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안목 할리스로 향해야 했지.


소나무가 빽빽한 송정을 지나는 동안, 당신은 뭐가 좋은지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어.

그 모습을 보니 요즘의 나는 너무 무감각하게 사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웠지. 가까이 있는 것들에 너무 소홀해지는 것 같아. 매일 보는 풍경에 그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평일이지만 해돋이 인파는 여전히 여행을 즐기고 있었고, 오랜만에 바다에 간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어.

당신도 바다 사람이라 바다가 간절해지는 날이 있을 텐데. 그 갈증이 이제 좀 풀렸을까?


나는 일부러 바다가 잘 보이는 위치에 당신을 앉히고 나는 당신이 잘 보이는 위치에 앉았지.

그래서 당신이  바다를 생각하면 나를 떠올리길 바랬어.

하나의 인상으로 당신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싶었거든.


가까이서 본 당신은 어딘가 만화 속 주인공을 닮았어.

작은 코를 두고 양쪽에 앙증맞은 점 두 개가 귀여워서 자꾸만 눈길이 갔지. 순간, 바다와 당신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어. 그렇게 예쁘다, 예쁘다 생각하다 서울에서 내가 찍어 준 당신의 예쁜 모습이 떠올랐고, 같이 갔던 전시회가 떠올랐고, 동시에 웃음이 쏟아졌지.


우리 그때 참 재밌었는 데.

작은 골목을 같이 걷던 것도 생각나고.


그날 우리가 이렇게 바다를 곁에 두고 마주 보는 날이 있으리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입버릇처럼 강릉에 놀러 오라고 했던 말이 진짜로 힘을 발휘한 걸까?

그렇다면 뭐든 입버릇으로 말하고 싶어지네. 당신을 생각하면 자꾸만 그래.


그거 알아?

당신은 참 순수한 눈을 가졌어.

나는 당신이 만든 그림도 좋아하고 당신이 쓰는 글도 좋아. 그래서 항상 응원해. 당신은 그런 내가 고맙다고 했지. 나는 그런 당신이 고마운데.


내 이야기를 그렇게 깊게 천천히 들어주는 사람은 몇 없어.

그래서 어딘가 장난스러워지기보다 조용해지고 차분해지는 것 같아.

겨울이면 자꾸만 오므라드는 마음이 봄을 만나 천천히 펴지는 기분이야.


헤어지기 전 당신은 곧장 내리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봄빛 닮은 눈으로 날 쳐다봤지.


너무 좋았다고.


당신이 붙잡았던 내 손에, 내 어깨에, 봄의 온도들이 남아있어.

가끔 마음이 한 겨울일 때 심장이 잔기침을 할 때,

일렁거리는 겨울 바다와 내가 떠오르면 좋겠다.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야.


@클레멘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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