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크 엘링턴 1899.4.29 – 1974.5.24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방대한 음반 목록을 언급하며 ‘만리장성 앞에 선 야만족처럼 압도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탄식했다. 재즈 마니아인 하루키가 그렇다는데 보통의 애호가들은 오죽할까 싶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찾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드넓은 명소라도 그 안에 방문객을 위한 관광 스팟은 있게 마련이다. 그게 꼭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오히려 지금의 정서와 부합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만한 공간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의 첫 번째 선택은 1963년작 ‘Duke Ellington Meets Coleman Hawkins’ 앨범이다. 그야말로 레전드가 레전드를 만났다. 여기엔 오래전부터 엘링턴과 함께해온 조니 호지스(Johnny Hodges), 해리 카니(Harry Carney), 로렌스 브라운(Lawrence Brown) 등의 정예멤버가 포진했고, 오래전 밴드를 떠난 테너 색소폰 주자 벤 웹스터의 자리를 콜먼 호킨스가 대신했다. 호킨스는 혈혈단신의 몸으로 엘링턴의 본진에 들어간 것이다. 두 거인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하지만 그 모습은 대결이 아닌 정겨운 화합에 가까웠다.
앨범의 첫 곡 <Limbo Jazz>에서부터 축제 분위기가 가득하다. 이후 <Mood Indigo>에서 <Solitude>로 마무리되기까지 엘링턴의 스탠더드는 또 한 건의 흥미로운 해석을 남겼다. 이 앨범은 노장 엘링턴이 선사하는 뜻밖의 선물이다. 장구한 세월의 대장정 속에서 ‘만리장성’의 일부를 차지하는 빛나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