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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pr 01. 2024

나이 들어도 장난은 여전히 재밌다

113 벌써 만우절

 나의 태생적 원수, 오빠가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

다.

본인은 우리 집에 온 손님이라며 이거 갖다 주라 저거 갖다 주라 뭐 내와라 이거 사 와라 저거 사 와라 나를 종 부리듯 하는 게 눈꼴 셔서 어떻게 복수하면 좋을까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다.


엄마 부탁대로 오빠 점심을 대충 차려주고 다이소에 물티슈를 사러 갔는데 마침 수를 할 수 있는 제물을 발견했다.

바로 바퀴벌레 모형 장난감.


크기가 이상하리만큼 크지만 천 원짜리 치고 디테일 확실하고 대충 쓱 보기에, 속을 확률 70퍼센트 정도는 되어 보였다.


이거다.

이 놈 한 마리만 있다면 오빠의 간을 떨어뜨리고도 남으리라. 오빠를 엿 먹일 생각만으로 오랜만에 코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와 연신 흥얼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깃털만큼이나 가벼웠다.

이 바퀴벌레로 어떻게 하면 오빠 놈을 엿먹일까.. 고뇌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기회는 한 번뿐이다. 어설픈 실수는 실패를 부른다. 인위적인 행동을 하면 오히려 오빠의  끌끌 차는 소리만 듣고 실패로 끝나버리는 치욕을 겪을 것이다. 오빠의 2박 중 1박은 이미 지났고, 다음날 새벽에 먼 길을 떠나기에, 기회는 지금 아니면 없었다. 어쩌면 좋을까, 어찌하면 복수를 할 수 있을까 '하느님 부처님 도와주세요 앞으로 남을 도우며 살겠습니다' 깊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가득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신이 나의 음성을 들었는지, 때마침 오빠에게서 카톡이 왔다.


'올 때 아이스크림 하나 사온나'


이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고뇌에 빠진 나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아. 이. 스. 크. 림.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불투명이라 그 안에 바퀴벌레 장난감을 넣고 살짝 덮어도 모를 것이다. TV에서 프러포즈할 때 아이스크림에 반지를 넣어 청혼하는걸 여러 번 본 적 있다. 그 기억이 오늘에서야 도움을 주다니. 당장 마트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한 통 샀다. 그리고 얼른 집에 와 작은 컵에 세 숟가락 크게 펀 다음, 나의 모든 염원과 오빠 엿먹이 고자 하는 큰 소망을 바퀴벌레에 담고서는 보이지 않게 아이스크림 속으로 푹- 눌렀다.


오라버니, 어서 달콤한 엿 드세요.


벽에 기댄 채 유튜브 영상에 푹 빠져있는 오빠는 아이스크림 그릇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오른손으로 대충 받은 다음, 바로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오 이런이런.

오빠를 보채면 들킬 것 같아 두 눈 가득 염원을 담았다.

'어서 잡솨'

'김 씨 이 인간아, 어서 입에 처넣으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입 주변 근육은 아주 잔잔하게 파르르 떨렸다. 아이스크림이라 녹을 것이고, 그럼 숨겨져 있던 바퀴벌레 더듬이가 빼꼼 나올 것이다. 초조함에 똥줄이 타들어갔다.


안 되겠다.

저 인간이 어서 처먹도록 유도를 하자


나는 우리 오빠의 약점을 안다 바로 그것은, 


'동생년 줄 바에 본인이 다 먹고 배탈 나겠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본인이 아끼는걸 내가 먼저 먹거나,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는 걸 굉장히 싫어했다. 그 심리를 이용하여 오빠를 움직여보기로 했다.


"야, 아이스크림 녹는다. 니 안 먹으면 내가 먹을게."


가져가려는 오버액션을 함께 겉들여 무심한 듯 툭 한마디 던졌다.  한마디에 기상나팔 알람소리를 들은 군인처럼 몸을 바로 일으켜 세워 아이스크림 그릇을 손에 들었다. 두 눈은 여전히 유튜브에 고정한 채로 한 숟가락을 펐다. 한입 크게 먹을 심산인지 움푹 펄라고 하다가 숟가락 끝에 딱딱한 뭔가가 닿는 게 느껴졌는지 '어?' 외마디 짧은 반응과 함께 숟가락을 뒤척거리더니,

오우 씨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

ㅆㅣ이바아아아알


4옥타브 고함과 혼비백산의 콤비네이션.

공중부양하는 도인처럼 저 멀리로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작전성공.

내래 오늘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갓소.

아주 현명했던 다이소 쇼핑. 


저어 어어만큼 도망갔던 오빠가 다시 돌아와 그릇을 자세히 살펴봤다. 이제야 장난감임을 알았지만  징그러워서 진짜 같다며 정말 속았다 했다. 기분 좋았다. 오빠가 조카 울음 달래준다고 며칠을 밤새웠다고 징징 걸렸을 때만큼 기분이 좋았다. 오빠는 부모가 된 뒤로  어른이 됐는지 내 장난에 예전처럼 불같은 화는 내지 않았다 헷.


오빠는 바퀴벌레를 물로 씻고 와서는 손바닥에 올려보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장난감인 거 알고 봐도 소름 돋게 징그럽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집에 갈 때 들고 간다고, 올케언니한테 똑같은 장난을 처보고 싶다고 했다. 오빠가 혹시 올케언니를 꼴뵈기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에 주지 않았다. 이혼하면 내 탓이니까.




오빠의 놀란 반응을 보고 나니 과연 부모님은 속을까 싶은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빠와 편을 먹고 엄마나 아빠 중 먼저 들어오는 사람을 속이자 했다. 미리 나무 그릇에 바퀴벌레를 넣고 그 위로 과자를 부어 보이지 않게 덮었다. 누가 먼저 들어오든 우리는 과자를 권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1시간 뒤쯤, 계모임을 끝난 엄마가 먼저 들어왔다. 엄마가 씻고 와 우리 옆에 앉길래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과자를 건네기로 한 계획과는 달리 누가 봐도 '이 과자 그릇 안에는 당신이 놀랠만한 징그러운 뭔가가 들어있습니다'의 표정으로 오빠는 자꾸 엄마를 보며 입꼬리를 실룩실룩 거렸다.


저 병신ㅅㄲ..

인생에 도움이 안 돼요.


다행히 엄마는 오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보지 못하고 과자 그릇을 받아 들고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한두 개씩 주워 먹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에 이상한 뭔가가 닿였는지 이내 과자그릇을 내려다봤고 그 순간

안녕하세요 김바퀴벌레입니다. 리액션 맛집이라 해서 구경 왔습니다.


끼아아아 아ㅏㅏㅏㅏㄱ욧


엄마가 과자 그릇을 공중에 던져버렸다.


성공.

나이 40 먹은 불효자식들은 어머님의 괴성에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엄마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방바닥에 나자빠진 바퀴벌레를 맨손으로 때려잡으려고 손바닥을 펴고 내려치려고 했지만 밑부분에 붙은 자동차 바퀴를 보고는 그제야 장난감임을 알게 됐다. 본인이 놀래서 과자 그릇을 냅따 집어던진 게 웃겼는지 박장대소를 하고서는 앞으로는 이런 유치한 장난 하지 말라고 했다. 나이 먹고 이런 짓 하는 걸 누가 볼까 봐 창피스럽다고, 정신 차리라고 다그쳤다.



엄마의 말에 나는 진지해졌다.

그래. 나이 먹고 이제 무슨 짓이야. 이구 이구 부끄러운 줄 알자. 철 좀 들자.


엄마의 말을 가슴에 새긴 채로, 천 원 치 소소한 즐거움을 끝으로 바퀴벌레 장난감을 버리려는 찰나에 엄마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오빠가 듣지 못할 정도로의 작은 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일단 버리지 말고 나 줘..."

'....?'

"나 줘.."


엄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아빠가 잘 때, 몰래 아빠 뺨 위에 올려놓고 싶다고 했다.

남편 뺨 싸대기를 공식적으로 때릴 수 있는 짜릿한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그럼 그럼.

분주아버지, 내가 때릴라고 때린 게 아니고 바퀴벌레 잡은기라요.

엄마의 큰 그림.


싸대기 시나리오 1

싸대기 시나리오 2

싸대기 시나리오 3

엄마가 계획하는 뺨싸다구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빠는 무슨 죄여. 

장난으로 던진 돌에 김씨아저씨가 맞아 죽을 판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단 태운다는 말처럼 바퀴벌레 모형 잡으려다 아빠 안면근육을 날려버릴 것 같다. 나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바퀴벌레 장난감을  미련 없이 버리기로 했다


즐거웠어. 바퀴벌레양.

다음생에는 사이좋은 가정으로 팔려가길 바랍니다.

 














+

막상 버릴라고 생각하니 아까워 재활용을 해봤다.

옆사람을 식겁하게 만드는 리미티드 에디션 바퀴벌레 키링!









그냥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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