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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Oct 25. 2024

버스 안 어르신과의 뒷통수 신경전

140

얼마 전에 버스안에서 생긴일이다.


조용히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에 올랐다. 빈자리가 여러 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나의 바로 뒤, 길게 늘어선 좌석 맨 끝자리에 앉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버스 안은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할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마치 실시간 중계라도 하듯, 버스 안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목소리 톤은 매우 크고 호탕했으며, 주변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1인 유튜버인가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연세를 보아하니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조용한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의 큰 목소리는 나에게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너무너무 큰 소리라, 나도 모르게 뒤를 살짝 돌아봤다. 순간,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민망함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나의 눈빛에 기분이 상하셨는지 전화를 금새 끊으셨다. 설마 내 시선 때문에 전화를 끊으신 건 아닐까? 괜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5분쯤 지났을까, 어르신은 버스 하차벨을 누르시더니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

나에게 한마디 하실까보다.



새파랗게 어린놈새끼가 어디 어른한테 눈을 부라리냐고 한차례 청학동 훈수를 둘껀가보다 싶어 심장이 쿵쾅거리며 입안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순간, 뇌는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변명을 꺼내야 이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눈이 원래 찢어져서 째려본걸로 오해하신거라고 변명을 할까, 아니면 어르신을 쳐다본게 아니라 목 스트레칭을 한다고 고개를 돌렸다고 헛소리를 할까. 아, 뭐라고 하지.


변명을 고민하는 찰나에, 어르신이 또 한번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돌아볼때까지, 딱딱구리가 나무를 쪼으듯 내 어깨를 쪼으실것 같았다. 내 어깨 절반은 떨어져 나가겠구나.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는 순간, 쏟아질 듯한 잔소리와 함께 내 마음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 뻔했다. 절대 뒤돌아보지 말아야지.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나를 부르셨다.



아가씨, 아가씨.



이런, ㅈ됐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이렇게 된거 그냥 울며 겨자먹기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으로 뒤로 돌아봤다.


저... 저요?

무슨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먼저, 제가 그냥 죄송합니다.

아이엠 쏘리.



돌아봄과 동시에 어르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실 준비를 하셨다. 그때, 어르신은 갑자기 허리를 숙여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내 귓가에 입을 대고 무언가를 속삭이셨다.



"아가씨 뒷통수에 흰머리가 한가닥 있어.

보기 안좋아, 집에가서 뽑아."




예................?




그리고는 무릉도원을 떠나는 신선처럼 유유히 버스에서 내리셨다. 뺨맞은거보다 황당스런 흰머리 플러팅에 한동안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나 싶었다. 차라리 화를 내시지. 일단 어르신의 말씀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최대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목을 곧추세우고, 마치 축지법을 쓰듯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너무 궁금해서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뒷통수를 셀프로 찍어봤다. 과연 어르신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봤지만,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흰머리는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뒤를 휙 돌아본 것에 대한 말장난을 치신걸까. 저번에 흰머리 하나 난 뒤로 꼼꼼히 확인했는데, 어디서 흰머리를 보셨는지 정말 궁금했다. 괜히 쳐다봤다가 이런 당황스러운 일을 겪으니 앞으로는 조심해야지. 앞으로 버스 안에서 누가 아무리 고함을 치더라도 함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겠다.














352번 버스 어르신, 당신을 시력 4.0으로 인정합니다.

덕분에 회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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