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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쏭 May 09. 2023

사랑을 갈아넣어야 생명이 된다

장수풍뎅이의 사랑

간만에 비다운 비가 왔다. 연휴 내내 내린 비 덕에 아파트 단지 앞 안양천의 물도 징검다리가 넘칠 만큼 불어났다. 비 오기 전과 후의 풍경이 사뭇 달라 보인다. 먼 산은 하늘색과 어우러져 청록색쯤으로 보이고, 가까운 공원의 나무들은 짙은 초록색이다. 름이려나 싶은 이 계절, 이맘때면 늘 생각나는 커플이 있다.


30대 중반의 젊은 엄마였던 나는 육아에 전투적이었다. 엄마표로 체험형 육아를 꿈꾸었기에, 집안에 식물, 곤충, 동물 등을 하나씩 들이기 시작했다. 무당벌레알, 도롱뇽알, 올챙이, 달팽이, 나비애벌레, 등등 내 눈에 포착된 녀석들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강제로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해야 했다. 늘 시작은 아이들에게 성장의 과정과 책임감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으나,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들의 관심은 멀어졌고 사육은 온전히 ’  일‘이 됐다.


장수풍뎅이를 집안에 들이게 된 것은 조금은 다른 이유였다. 복숭아 농사를 짓는 작은 아버지가 데려다 키우라고 건네주시기 전까지는 ’다 자란 누군가 ‘를 집에 들인다는 건 나답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충을 데려다 뭐에 쓴담.’ 게다가 이 장수풍뎅이는 체격은 컸지만 수컷의 힘의 상징인 뿔이 휘어 있었다. 자연상태에서 곤충도 이렇게 기형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고 낯설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장수풍뎅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아이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다 자란 장수풍뎅이는 시골의 생활을 접고 도시의 케이지속 삶을 시작하게 됐다.

 

야생에서만 살던 생명체라 그런지 밤이 되면 작은 사육통 안은 ’ 푸드덕 푸드덕‘ 소리로 요란했다. 먹이에는 그닥 관심이 없고 탈출을 하고자 하는 열망만 가득한 것인지, 며칠 째 먹이통을 엎어놓고, 밤에는 온갖 시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원래 내가 살던 곳으로 가고 싶단 말이야. 이 나쁜 인간들아”라고 소리치는 거 같았다. 차로 2시간 넘게 걸리는 제 고향으로 데려다 주기에는 너무 번거롭게 느껴지고, 뿔이 온전한 것도 아니니 도시의 산에 풀어준들 잘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암컷을 하나 들이면 어떨까,

같이 적응해서 잘 살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암컷 장수풍뎅이 한 마리를 주문했다. 생명체를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는 게 씁쓸하면서도 그걸 이용하고 있는 나 자신이 속물처럼 느껴졌다.


하루 반나절 만에 배송, 택배 박스를  개봉하기 전부터 부스럭부스럭, 꽤 활동적인 암컷이 올라탄 모양이었다. 박스를 개봉해 보니 상자 안에 있는 사육통 밖으로 흙이 흩어져 있고 좀 전까지 에너지를 발산하던 암컷은 보이지 않았다. 먼 길을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이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터였지만, 상품이 제대로 왔는지를 확인해야 했던 나는 풍뎅이의 상황을 고려해 기다려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흙을 헤집으니 집에 있는 수컷의 3분의 2 정도 체격의 암컷이 숨을 곳을 찾느라 바둥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컷에 비하자면 수수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행동은 어딘지 민첩해 보이는 암컷을 들어 올려 수컷이 있는 사육통에 넣었다.


수컷이 바로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러자 암컷은 정신없이 숨을 곳을 찾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암컷이 수컷을 무서워하는 거 같다며 잡아먹으면 어떡하냐고 한 걱정이었다.


“엄마, 쟤가 얘 싫어하는 거 같은데?”

“그러게, 무서운가? 아님, 뿔이 휘어서 마음에 안 드는 건가? “


곤충도 선호하는 이성에 대한 기준이 있는 건지, 호감을 느끼는 이성의 스타일이란 게 있겠지 싶으면서도, 선택권 없이 강제로 ’ 합방‘ 시킨 거 같아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틀간 암컷은 먹이를 먹지도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다만 수컷의 행동에 변화가 인듯한 모습이었다. 수컷은 주로 밖으로 나와 있었고 전보다 먹이도 더 왕성히 먹는 거 같았다. 사육장에서 탈출하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를 나흘째, 암컷이 밖으로 나와 먹이를 먹고 있었고, 수컷이 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귀찮게 다가가지도 않고 밀쳐내지도 않았다. 먹이를 새로 넣어주면 암컷이 먼저 먹고, 수컷은 나중에 남은 것을 먹는 거 같았다.


이 마음의 문을 연 것일까?

며칠간 사육통 안은 고요하고 평온한 듯했다. 일상의 부부처럼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어느 날엔가부터 암컷은 여기저기 땅을 파헤치고 들어갔다 나왔다 분주한 모습이었고 수컷은 암컷이 흙 위로 올라오면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양보할 뿐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오랜만에 먹이통 주변에서 암컷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는 것인지 쉬는 것인지, 암컷은 사육통에 넣어둔 놀이목에 기대 가만히 있고 수컷이 바로 옆에 붙어서 지켜보는 거 같았다. 수컷만 조금씩 움직일 뿐 암컷은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거 같았다. 어떤 상황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짝짓기를 하려고 준비 중인 걸까, 아니면 암컷이 알을 낳을 준비는 하는 걸까.. 여러 모로 궁금한 상황이었지만 알 수가 없었던 터라 며칠째 입도 대지 않은 거 같은 젤리만 새것으로 갈아 넣어주고 신경을 끄기로 했다.


젤리를 좀 먹었을까 싶어 풍뎅이집을 들여다보았다. 이상하게도 암컷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같은 포즈로 가만히 있었고, 수컷 또한 그 옆에 붙어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왜 이러고 있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암컷을 건드려 보았으나 미동도 없다. 암컷을 들어 올리니 수컷이 암컷을 더 세게 붙든다. 사육통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매달린다. 데려가지 말라고 울부짖는 것 같다.


암컷은 수컷과 겨우 삼주일 정도를 살고 작별을 하게 됐다. 수컷은 이후에도 암컷이 잠든 자리 주변을 서성일뿐 큰 움직임이 없었다. 영원히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암컷을 잃은 슬픔 때문인지 그 또한 살만큼 산 것인지, 암컷이 떠나고 일주일이 되었을 즈음 수컷은 암컷이 잠들었던 자리에 암컷이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너무 짧은 두 곤충의 삶.

좁은 사육통에 두 마리를 키워서였을까, 아니면 살던 곳이 아닌 낯선 곳에서의 삶이라 그토록 짧은 삶을 마감한 것일까. 처음에 사육통 세트를 사고 장수풍뎅이 젤리를 100개 주문했을 때는 적어도 100일은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는데 허무했다.


허탈한 마음으로 신문지를 깔고 사육통 청소를 시작했다. 사육통을 엎어서 흙을 털어내는데 흙 덩어리 사이로 뭔가 하얗고 노란 진주 알갱이 같은 것이 보인다. 주변 흙을 파헤치니 군데군데 적지 않은 양의 진주알, 손톱만큼 작은 애벌레도 몇 마리 보인다. 빠짐없이 샅샅이 파헤치고 보니 알과 애벌레를 다 합쳐 30마리가 넘는다.


생명

짧은 삶을 산 장수풍뎅이 부부는 서른 마리가 넘는 생명을 남기고 자신들이 왔던 흙으로 다시 돌아다. 짧은 생애였기에 더 열렬히 사랑했던 것일까. 암컷을 홀로 떠나보내지 못해 계속 그 옆에 붙어서 꼼짝 않고 있었던 수컷 장수풍뎅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진초록 계절은 그날의 장수풍뎅이를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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