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뺑그이 Jul 15. 2023

미디 작곡 아저씨 수강생


집에서 가까운 곳을 우선순위로 학원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드문드문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망설이기만 했었다. 하지만 오늘 꼭 용기를 내볼 마음이었다.


통화를 하니 방문상담은 바로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난 이왕 마음먹은 거 미루지 말자 생각하고 학원으로 당장 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난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늘 걷던 동네 골목길인데 오늘따라 새삼 신나게 느껴졌고 걸음걸음에 옛 추억들도 떠올랐다.


학창시설 수학여행을 가면 모닥불 피우고 캠프파이어를 할 때 반 대표로 무대 올라가서 춤을 추는 아이들이 있었.


그게 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 안무를 따라 췄고 비보잉도 했다. 춤을 추고 돌아다니니 우리를 좋다고 따라다니는 팬클럽 같은 여자 애들도 있었다. 난 여자 애들과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나중에 내가 대스타가 되었을 때 스캔들이 터지거나 싸가지가 없었다는 악성루머에 시달릴 수 있으니 일찌감치 나는 자기 관리를 시작한 것이었다. 아주 꼴값도 가지가지였다.


혼자 춤을 추지는 않았고 끼리끼리 논다고 같이 마음이 맞아서 춤을 추던 친구들이 있었다. 같이 춤추던 친구 중에 한 명이 어디서 무비 카메라를 구해 날이 있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이 손쉽게 되는 세상이지만 그 당시는 무비 카메라가 있어야만 동영상 촬영이 가능했다. 집집마다 흔히 있는 물건도 아니었고 한 번 만져보기도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귀한 걸 영접한 들과 나는 무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엄청 신나 하고 또 신기해했다.


무비 카메라 하나로 신난 우리들은 무스와  그리고 스프레이까지 총동원해 가며 앞머리를 바짝 세웠다. 또 다른 친구는 갱스터 래퍼 느낌을 낸다고 한여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까지 비니를 썼다. 힙합 바지는 엉덩이에 걸치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벨트를 찼다. 온갖 똥폼 다 잡는 코디를 마친 우리는 무비 카메라와 커다란 카세트 더블 데크를 어깨에 둘러메고 을 나섰다. 우리가 지나가면 여학생들이 입을 가리고 힐끔힐끔 곁눈으로 보기도 했고 아주머니들은 바지를 질질 끄느라 아주 동네를 다 쓸고 다닌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우린 그런 시선들이 다 스타로 가는 하나의 예행연습이라 여겼다. 


평소에 점찍어둔  건물, 폐공장, 공사현장과 후미진 뒷골목에 가서 우린 뮤직비디오 촬영을 시작했다. 소품으로 그럴싸하게 드럼통 같은 곳에 불을 지펴서 할렘가 느낌도 연출했다.


"레디 액션!"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손바닥 슬레이트를 면서 한컷이라도 더 돋보이게 찍히겠다고 온갖 오그라드는 제스처를 다 동원해 가며 거의 지랄에 가까운 발광을 했다.


해가 떨어지고 무비 카메라의 배터리가 떨어져도 우리의 열정은 방전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 무비 카메라를 연결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의 소원이 이루어지던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비디오 영상들을 어디 연예기획사에 보냈더라면 우린 댄스 가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꽤나 감각적이었고 춤도 잘 추는 편이었다. 나름 퀄리티가 있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땐 지금처럼 크고 유명한 기획사들이 생기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걸 어디에 보낸다는 발상자체를 우린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연합고사를 치렀고 친구들과 나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배정받게 되었다. 나는 그즈음 헤비메탈에 푹 빠지면서 춤과 힙합 대한 흥미는 많이 사라졌었다. 반면 같이 춤췄던 친구들은 같은 고등학교를 배정받아서 꾸준히 힙합 음악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어쩌다 나는 자영업자가 되었고 같이 춤을 춘 친구들은 앨범을 내고 데뷔하는 신인가수가 되었다.


친구가 낸 앨범 뒷장 SPECIAL THANKS TO에는 고맙게도 '한 때 같은 꿈을 꿨던 친구 뺑그이 고맙다!'라고 적혀 있었다. 친구의 앨범을 손에 들고 그 문구를 읽던 내 마음은 뭔가 묘해졌다.


친구들은 내 바람과 다르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후 친구는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로 전향을 다. 빅뱅, 빈지노, 아이유, 지코, 자이언티, 태양, 에픽하이, 2NE1, 악동뮤지션등과 함께 음반작업을 했고 현재도 활발한 음반제작을 하고 있는 잘 나가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학원으로 가다 보니 금방 학원에 도착했. 언젠가는 언젠가는 꼭 음악을 배워봐야지 20년이 넘는 세월을 미뤘는데 막상 전화를 고 움직이니 20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원장 선생님은 나보다 어렸. 내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즐거운 취미 차원인지 아니면 심도 있는 수업을 원하는지 혹은 새미프로 정도의 심화반을 원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상담했다. 학원비를 설명해 주시면서 내게 고민을 한 번 해보시라고 했다. 덥석 OK라고 하기엔 비싼 학원비라서 그러는 거 같았다. 백지상태인 내가 직접 부딪히기 전엔 어떤 게 좋은 선택지인지 알 수도 없었다. 난 생각해 본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등록을 마음먹고 있었다.


상담을 하고 나서 원장선생님은 학원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었다.


복도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걸어오다가 우리와 마주치니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아이와 내가 같은 학원생이라니 맙소사! 휴게실엔 중학생 정도인 여학생 둘이서 고양이와 놀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장선생님이 키우는 고양이 같았다. 여학생들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고양이를 잡으러 다니며 계속 낄낄거렸다. 동전노래방처럼 나누어진 연습실 칸막이 안에는 교복을 입은 여드름 난 남학생도 있었다. 난 학생들을 보자 갑자기 어디선가 그들의 학원비를 벌고 있을 부모님들이 떠올랐다. 난 애도 없는데 갑자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서른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이 악보를 보고 있었다. 또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도 무슨 수업을 받는 중인 거 같았다. 그 남자가 보는 화면을 보니 보컬에 관한 영어 단어들이 있었다. 그나마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학원생들을 보자 내심 안심이 되었다.


난 학원상담을 마치고 나왔다. 난 집에 도착하면 학원을 등록하고 가능하다면 당장 내일부터 수업을 받겠다는 전화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대단한 음악을 만들어 보겠다고 학원에 등록 것이 아니다. 나중에 내가 더 나이가 들어 몸이 아파 침대에 누워있는 날이 왔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등록하려는 것이다.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며 서 있다 보면 내 앞으로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간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 난 나름대로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어쩜 이렇게 아는 얼굴 한 명 마주치기가 힘들까.


마음에 드는 사람을 봐도 왜  한 번 걸기를 망설였을까. 난 왜 내 뜻을 표현하는데도 그토록 주저했을까. 철판 한 번 까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어차피 세상에 모르는 사람 투성인데 도대체 뭐가 창피하다고.

 

내가 65살이 된 어느 날.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고 서 있는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쳐 갈 때.


"철판 깔고 그때 음악학원 등록이라도 해볼걸..."


혼자 되뇔까 봐. 등록을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학원 등록을 했지만 학원은 내가 다니는 것이 아니다.


모닥불 캠프파이어 옆 무대에 올라서 춤추던 나. 그리고 무비 카메라를 들고 신나게 뮤직비디오를 찍던 나. 그리고 친구들의 데뷔 앨범 뒷장을 열어 SPECIAL THANKS TO에 적힌 한 때 같은 꿈을 꾸었던 친구 뺑그이. 그 이름을 마주했던  학원에 보내주는 것이다.


지금의 난 학원비를 내는 학부모이고 과거의 내가 학원생이다. 늦게 보내줘서 미안할 따름이다.





박명수의 명언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거다 ㅋㅋㅋㅋㅋ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다.


인생 안 길다. 마음껏 살진 못하더라도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그거 하나는 살면서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불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