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철에 이런 설경을...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2024년 2월 22일 이 글을 쓴다. 무슨 대단한 문학작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날짜까지 밝히는 이유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 우수(雨水)가 지난 이 시절에 너무 이름다운 설경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는 30년도 넘은 오래 된 아파트다. 그래서인지 나무도 제법 우거져 있고, 또 언덕 위에 있어서 때가 되면 제법 그럴싸한 풍경도 볼 수 있다. 서울 아파트의 10평 값도 안되는 아파트지만 불만 없이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설경을 보고는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수 없어 이글을 쓴다. 그제 밤부터 강원도에는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러나 강원도야 항상 눈이 많이 오는 곳이고, 또 우리집과는 한참 떨어져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창문을 통해 본 밖의 경치는 “오, 야!” 였다. “세상에나! 이런 기막힌 설경이 눈앞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정경이었다.
옛날에는 함박눈도 펄펄 내렸다. 추워서 오돌오돌 떨기도 하였다. 그런데 왠 일인지 요즈음은 영 아닌 것 같다. 눈이라고 해봐야 싸래기 눈이 조금 오거나, 함박눈이 오드라도 금방 녹아버린다. 추위라고 해봐야 옛날 같은 추위도 아니다. 기상학과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다. “우리나라 겨울날씨는 과거에 비해 1゚C 밖에 높지 않다. 그리고 눈 오는 양도 과거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다.” 분명히 과학적 통계에 의해 말하는 것이니, 그 친구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감정은 영 아니다. 영 아닌 것이 아니라, “여~~~엉” 아니다.
왜냐하면 옛날엔 방에 연탄불을 땟지만 윗목에 떠 놓은 물이 꽝꽝 얼었고, 유리창문에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성애꽃이 가득 피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C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니.
“앵이!!!”
그리고 그 당시 또다른 추억도 있다. 그 옛날에도 정부에서 과외공부를 강하게 금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그 엄청나고, 질긴 어머님들이 정부의 괴외금지 지시를 따를 리가 없다. 시내에서 과외는 어려우니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공민학교(비인가 학교였던 것 같다.)에서 과외를 하였다.
그러나 그 학교는 집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두꺼운 겨울 교복을 껴입고 다녔다. 그리고 분명한 나의 기억은 그때 교복 안에 있던 만년필의 잉크가 얼어서 글씨가 써지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런데 1゚C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니, 과학적 통계야 믿을 수밖에 없지만, 나에게 감정적으로는 별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림 1.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작은 아파트 숲
그림 2.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 본 테니스 장(바지런한 발자국들)
나는 어렸을 때 동요를 많이 불렀다. 왜냐하면 왠 일인지 모르지만 내 주위에 같은 또래의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서너뼘 시골집을 뱅글뱅글 돌거나. 아니면 집앞 화단에 있는 꽃들을 보고 또 보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겨울철이 되면 혼자 노래를 불렀다.
“퍼얼 펄 누운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아늘 나라 선녀님들이
소옹이 송이 하얀 솜을
자아꾸 자꾸 뿌려줍니다.
자아꾸 자꾸 뿌려줍니다.”
책이라면 아마 너덜너덜 떨어질만큼 불렀다.
이제 그런 낭만은 없지만, 오늘 아침 문득 이 진귀하고 진기한 겨울 풍경을 보니, 아스라한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하하. 그런데 이번 우수(雨水)의 설경을 보고 느낀 감정은 나만이 아닌가 보다. 친구가 (詩)를 보내 주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다.
봄눈이 폭설이 되어
광대살이 풀꽃을 덮었다.
거봐라!
내가 뭐라고 하대
봄이 왔다고
함부로 나발불며
까불지 말라고 했지?
야! 어찌 이 짧은 시귀(詩句)로 오늘 아침 눈길을 이리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역시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아이고 재주 없는 나야, 길고 긴 산문(散文)이나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