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한번씩 뼈가 부러진 친구들이 깁스를 하거나 목발을 짚으면 이상하게 부러웠다. 어설프게 공책을 말아 팔다리를 넣어보는 수준이 아니라 진짜 깁스라니! 어른들이 인정(?)해준 단단한 강철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망연자실한 와중에도 깁스나 목발과의 생활이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곧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도 이상한 우월감을 주었다. 남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나에겐 짜릿한 자극이었다. 깁스 해봤어? 목발 짚어봤니? 정말 극강의 철딱서니였다.
문제는 목발을 짚는 생활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버스 올라타는데 한 오백년, 내리는데 한 오백년. 양말 하나 신발 하나 갈아신는 것도 쉽지 않았고 가방까지 맨 때에는 무게 중심이 자유자재로 흔들렸다. 한발 걸을 때마다 온 몸의 무게를 상체에 실어야 했기에 나중에 손바닥과 겨드랑이가 더 아픈 지경이었다. 심지어 때는 슬슬 더워지는 6월 중순이었다. 내가 다친건 뼈가 아닌 무릎 관절이기에 깁스를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길게 했었는데 그 스멜이..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술은 아주 잘 됐다. 내시경으로 30분 정도만에 후딱 끝났고, 큰 후유증 없이 잘 회복하였다. 약 2주 후에는 계단도 속도내어 올라갈 수 있었고 한달정도 지나니 쪼그려뛰기도 가능할 만큼 금방 운동 능력을 찾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12명 남짓하던 동급생 중에서도 단거리 달리기는 3~4번째로 빨랐기에 계주 대표로 뽑히기도 했을 정도로 회복이 아주 잘 되었다. 물론 무리하거나 비가 오기 전에는(...) 조금 욱신거리긴 하지만, 사실상 거의 100% 회복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당시 나는 내 부상에 대해 어땠나 떠올려보면,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을 안하려고 애썼다. 분명히 절망하고 불안했던 순간이 있었다. 체대 입시라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에도 내심 고민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느라 적지 않은 에너지를 사용하였는데, 한 학기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 부상이라니. 일반 입시나 체대 입시 어느 쪽이든 한참을 뒤쳐져버렸다고 확신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찌릿한 통증을 주는 무릎을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부질없이 되짚어보기도 했다.
그게 다였다. 그냥 그러다 말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애써 감정을 외면했다. '뭐 어떡하겠어? 그렇다고 인생 포기할건 아니잖아' 정도였달까. 외면하고 외면하다 마지막에 다다르게 된 곳은 '무조건적인 낙관'이었다. '잘될거야' 수준이 아니라 '수술하고 한 2주 후부터 제자리멀리뛰기 연습해야지' 수준의 낙관이었다. 재활이나 회복기간의 개념도 없었던 시기에 혼자서 운동 복귀 계획을 짜고 앉아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낙관한 그대로 됐으니 다행이긴 했지만, 막상 미래를 모르던 그 순간에 그랬다는게 새삼 웃기기도 하다. 게으름뱅이처럼 걱정을 미루고 미루던 버릇이 그나마 스트레스를 줄여준 역할을 하기도 하는구나, 신기했다.
2학년이 지나 3학년이 되었다. 예체능 반은 학년이 올라가도 거의 반 배정이 바뀔일이 없었다. 그리고 3학년 부터는 본격적으로 입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두번째 위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