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도착한 후로 벌써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호주로 출발하면서 블로그도 열심히 하고 영어도 열심히 하고 이것저것 거창한 목표들을 세웠는데요, 그런 목표들은 오히려 지속하기에 마음이 부치더군요.
목표, 계획이라는 번쩍이는 이름을 붙이면 그걸 어느 수준 이상으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고 그 부담이 첫발을 내딛지도 못하게 하는 큰 방해물이 되는 것 같다는 것을 근래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뭐든 자연스럽게 오래오래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핑계들로 거창하게 시작한 호주의 일기는 시작에 머물러있었는데요, 이젠 자연스럽게 거창하지 않게 지금의 일상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또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지난 이야기부터 지금에 이르게 된 이야기까지 모두 말끔하게 정리하고 설명하면 좋겠지만 우선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언젠가 뒤돌아보고 싶은 그 순간에 다시 차차 담아볼게요.
혹시 읽고 계신 분들도 모든 궤적을 따라와야지 하는 부담보단 그냥 포도알 한알 달랑 뜯어먹듯 새초롬한 단락으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서론이 참 길어졌는데요, 무튼 요즘은 케언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88일간 일을 하면 호주에서 1년을 더 살 수 있게 되거든요. 잦은 이동과 안녕 사이에 가장 선명히 깨닫는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가 이더라고요. 이렇게 살던 사람은 어디에서도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던 사람은 저기에서도 저렇게 살게 되더라고요. 물론 환경이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순 없지만, 본질적인 것에 대해선 변함이 없음을 느껴요.
요즘 제게 가장 큰 화두는 그 어디에서든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따라 살자. 오늘 하루를 행복으로, 무해하게 살아내 보자 하는 것인데. 정작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징하게 스스로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이어리에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을 써보고 있어요. 요즘 스스로가 좋게 말하자만 안정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매사에 무뚝뚝해졌다고 생각했는데요, 다이어리 페이지 한가득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데 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아직 말랑한 심장이 열심히 두근거리고 있구나 확인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작은 것을 좋아하는 나'도 리스트에 넣어야겠군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모르는 내 취향 노래,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다이어리, 바삭바삭 크로와상, 뜨거운 햇살아래 시원한 바람, 찰나의 그늘, 잔디 내음, 햇살 아래 말리는 빨래,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좋은 음악, 일상 대화에서 들려오는 어제 공부한 새로운 영어표현, 멋진 스타일에 옷 입은 사람들, 디지털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는 시간, 행복한 노부부의 모습, 친절한 점원의 미소
이런 작은 행복들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선명하게 알게 되지 않을까요. 호주라는 공간은 어쩌면 나를 낱낱이 분해하고 재 조립하며 스스로를 분석하는 시험의 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공간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선명히 알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