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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Oct 23. 2024

한낮의 수다

epilogue

누구라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맞이한 오늘을 보내고 있다. 가지 않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과거엔 누구라도 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어떤 미련도 가질 수 있고 터무니없는 후회도 허락된다. 오늘날의 우리는 과거에 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의 집합체로 지금 여기 남겨진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내 앞의 오늘은 가보지 않은 길과 맞바꾼 귀한 하루다.


지금까지의 글들은 나와, 현재 혼인 중이거나 한때 결혼을 했었던 그녀들의 치열한 수다와 토론의 산물이다. 숱한 브런치 테이블과 커피 테이블위를 오갔던 대화와 그를 통해 누렸던 희열, 함께 나눈 절망을 몇 자락 끌어다 옮겼다. 결혼 전, 수많은 밤과 술상 앞에 마주했던 우리들은, 결혼을 하면서 밤이 아니라 오전과 낮에 만났고, 술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나의 결혼생활만으로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본래 이번 화는 이혼과 졸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 얘기한 대로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낳았고, 이런저런 가지치기 끝에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쓰기를 택하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재미로 시작했던 글쓰기였고, 어중간한 열정으로 써 내려갔지만, 결코 가볍게만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적었던 대로, 실용서처럼 잔소리처럼 정말 필요하고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옳은 소리만 늘어놓는 교과서 같은 글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이혼은 내일도 할 수 있고, 모레도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오늘일 필요는 없어."


꽤나 오래전 어느 토크쇼에서 중년의 여배우가 했던 말이다. 본인이 이혼을 해보니까, 상대방을 죽이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면 오늘당장 내가 죽을 것 같을 때, 하는 것이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에 불과했을 그 날의 방송은 내 결혼생활에도 햇수와 연차가 쌓이면서 진리 중의 진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결혼후의 선택들은 온전한 나의 행복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거라는 얘기를 그 여배우는 극단적으로 얘기해준 것이다. 의 행복이라는 건 결혼의 종지부라는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던 그 여배우의 초월한 듯한 표정과 말투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결혼을 하는 것과 그걸 유지하는 일은 매우 배타적이다. 이혼상태이면서 결혼상태일 수는 없다. 비혼이면서 동시에 결혼할 수도, 결혼을 유지하면서 졸혼을 할 수도 없다. 단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 데에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나한테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선이 무엇일지, 우선순위는 어떤 것인지, 지금의 선택이 맞는 것인지 아무도 답은 내려줄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모르는 채로 앞으로 나아간다. 적절한 타이밍이란, 나만 선택할 수 있다. 이 글이 무책임하길 원하진 않으나 사실이 그렇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결혼을 할 것이냐, 이미 유지 중인 결혼생활을 끝낼 것이냐, 계속해서 살기를 택할 것이냐, 를 결정할 때는 해볼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들, 주변에 요청할 수 있는 모든 도움, 가능한 많은 조언들 끝에 내려야 할 결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 내 앞의 선택지에서 나는 단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대가로 내일을 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내가 가장 중요하니까, 내 인생은 내가 살아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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