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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den Oct 20. 2024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는 말

너와 나의 교집합

내가 남편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직장동료였다면 당신이랑은 일절 말섞을 일도 없고, 같은 공기 마실 일도 안만들었테니 그런 줄로만 알아.” 농담처럼 얘기하는 데 사실 거기에는 진담도 반정도는 있다. 친구란, 비슷한 부류일 때 금세 친해지는 데 신기하게도 사랑의 속성은 조금 다르다. 자석의 양끝단처럼 서로 생소하고 나에게 없는 ‘어떠한’ 걸 가진 사람에게 본능적 이끌림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애주가인데, 자의에 의해서는 술을 한모금도 마시지 않는 남편에게서 바른생활사나이의 향기를 맡은 나나, 본인은 있으면 있는대로 돈을 쓰고, 안들어온 성과급까지 이미 들어온 것으로 계산해 지출을 최대치로 땡겨놓은 내친구가, 벌어들이지도 않은 미래의 연금까지 저축에 이미 넣어둔 남편을 고른 건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안맞고 반대인 성향의 사람에게 끌리는데 왜 끼리끼리는 싸이언스라는 운명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인가.


처음부터 비슷한 이들끼리 서로 뭉치게 되어있지만, 서로 상반된 사람들이 만났는데 끼리끼리는 싸이언스라는 얘길 들었다면 그건, 나쁜쪽의 유혹이 훨씬 달콤하고 짜릿한 성질의 것이라 따르기가 훨씬 쉽고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결혼생활에서라면 그건 이 결혼을 유지하려는 몸부립에 가깝다. 많은 갈등과 다툼, 반목과 불행을 넘어 싸움에서 이긴쪽에 맞춰가기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맞춰간다’ 기 보다 포기나 체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배우자가 격하게 원해서 따르다보니, 어느새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어있는 경우, 굉장히 흔하다.  그런 이들이 보통 갈등을 겪는 초기에 SNS에 글을 올린다. 친구에게 고민상담을 하게 만들고 커뮤니티에 하소연을 하게 만드는 사람과 나는 ‘안맞아서’다. “제가 예민한걸까요” , “누가 잘못한건지 봐주세요.” , “이런사람과 결혼해도 되나요.” 와 같은 류의 글들을 보면 둘이 ‘끼리끼리’ 가 안되어서 생기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서로 엇비슷했다면 남들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언정 둘은 죽이 잘 맞는 커플이다.


비슷한 데가 있는 사람과 연애와 결혼을 하라는 이유가 그래서다. 그 비슷하다는 부분이 직업일 수도, 정치성향일 수도, 취미생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하나쯤은 교집합이 있는 사람이어야 갈등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예를 한가지 들어보자. 내친구 하나는 매달 택시비와 책값으로 기 몇백을 지출한다. 친구기에 망정이자 남편이었으면 어땠겠냐며 차라리 차를 사고, 전자책 사이트 정기구독을 하라는 나의 충고에는 아랑곳없이 꿋꿋하게 돈을 쓴다. 하지만 친구의 남편은 그런 친구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본인도 사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불만이 없다. 그렇다, 친구 부부는 둘다 기자다. 이로서 둘은 싸울 이유를 적어도 하나 이상은 줄였다.


그런거다. 자란 환경이 다르고 - 지나치게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 속한 집단과 직업군이 다르거나 나이차이가 지나치게 난다는 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문제에 접근하는 구조, 문제해결 방법 등 다방면에 걸쳐 다르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지인중에 공무원의 아들과 결혼한 자영업자의 딸이 있다. 둘은 한 공공기관에서 만나 결혼한 사내커플이었는데, 아이를 둘 낳게 되면서 아내쪽은 퇴사를 하게 되었다. 아내는 창업을 하고싶고, 과감한 주식투자도 해보고 싶으나 남편은 ‘월급쟁이는 잃지않는 게 버는거다’ 는 신념을 고수한다. 둘 다 온화하고 이성적인 성품이라 다행이지, 당장 갈라섰을 위기도 많이 겪었다. 나도 그렇다. 교사 부모의 자녀로 자라다보니 월요일 오전 아홉시부터 금요일 오후 여섯시까지, 평생을 걱정없이 다닐 수 있는 안정된 직장만이 돈버는 방식이라 생각해왔다. 전문직 출신에 대기업에 잘 다니던 남편이 스타트업의 임원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했을 때 기함을 했고 갈등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물론 모든 게 일치할 수 없고, 비슷한 부분이 있다해도 매일이 싸울거리들로 가득한 게 결혼생활이다. 그래서 이미 결혼생활중이고, 배우자와 잘 안맞다고 생각한다면 같은 취미생활 하나쯤은 공유하길 강력추천한다. 나야말로, 취미생활을 재미없게 남편이랑 왜 하냐는 사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과 골프를 시작하고 나는 왜 부부가 함께 하나라도 취미를 공유하면 좋은가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취미생활의 속성이란 게 그렇다. 마냥 좋은 것, 빠져드는 것, 자본주의의 논리로 굴러가는 속세에서 유일하게 작은 사치도 해보는, 나의 ‘숨쉴 구멍’ 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앞에서 너그러워지고 인격은 그 너그러움에서 나온다. A부터 Z까지 뭐하나 겹치는 데가 없는 자석의 끝과끝같은 우리라도 필드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진다. 집에서라면 가자미눈을 떴을 서로의 헛소리와 쉰소리도 허허, 하면서 넘기게 되는 여유가 생긴다. 그러다보면 심각한 이야기도 가볍게 넘겨지고, 중대한 결정에 비교적 쉽게 의견합치를 보는 순간도 신기하게 오더라.  ESFP와 INTJ의 대단결을 골프로 봤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상하로든 좌우로든 직업이나 집안, 또 나이가 너무 차이나지 않는 사람을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지, 누군가 한 사람이 너무 처지거나 집안이 차이가 나게되면 사사건건 그게 약점이 되고, 모든 문제와 단점의 근원이 그 차이로 귀결되는 인과관계의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마치 그 어디가 아프다고 말해도 모든 진단을 ‘핸드폰을 많이 해서’ 라고 내리는 엄마처럼.


 그리고 leader 와 follower의 만남이 끼리끼리의 조합을 만들어준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만난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자아가 없는 남편을 만나야 가정이 평화롭다’ 고들 얘기한다. 어디 남편뿐일까. 내 의견에 토달지않고 잘 따라주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다툴일은 없을 것이다. 살아보니 그게 바로 직장이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leader형과 follower형의 인간들의 적절한 조합에 관한 얘기란 걸 알게 되었다. 나와 역할이 구별되는 사람과의 만남이 가정의 평화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leader 와 leader의 만남이 최악이고, 둘다 follower라면 집안은 평화로우나 중요한 일이나 큰 결정에 진척이 없다. 한명은 의견을 제시하는 leader 역할, 한명은 따르고 조율하는 follower인 경우가 균형이 좋았다.


  끼리끼리는 싸이언스라는 말은 유유상종이나 초록동색과 같은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조롱의 의미가 들어있지만, 결혼생활이야말로 끼리끼리 만날 때 불행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을 하라는 옛말 틀린거 없다고 결혼생활 내내 절감했지만, 비슷한 사람이란 사실 세상에 없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같아야 비슷하다고 인정할 것인지, 다르다면 얼마나 다른것인지, 아무도 우리에게 가이드라인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질문도, 답변도 모호한 문제앞에서는 최악의 경우를 배제하는 것이 최선이 될 수도 있다. 궁합이라는게 그렇다. 교집합이 전혀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이, 역할이 겹치는 사람보다는 분배가 가능한 사람이,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보다는 취미생활을 하나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공통점이 ‘1도 없어서’ 끌렸던 배우자인데 결혼생활내내 ‘1도 없다는’ 그 점때문에 실망했고 다퉜다. 교집합이 있는 사람을 만나 그 넓이를 조금씩 넓혀가는 일이 나를 불행에 빠드리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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