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날것인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가장 에누리없는 방식이었다. 사랑은 분명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피나게 투쟁하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아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김형경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오랜 시간 연애한 많은 연인들이 ‘할 때가 되어서’ 결혼을 선택한다. 마찬가지로 오래도록 혼자였던 사람들도 '할 때가 되어서' 서둘러 짝을 찾고 결혼을 결심한다. 라떼는(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던 시기), 그러니까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이 보여주듯, 서른이 넘은 결혼 안 한 여자는 노처녀였고, 낙오자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사회적 시선같은 게 있었다. 그때만해도 결혼은 통과의례였고,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처지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였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결혼을 해서서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고나서 결혼을 해야하는 거였다. 라떼는 그저 나이를 먹었으니까, 부모님이 하라고 하니까, 친구들도 하니까, 얼렁뚱땅 결혼들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결혼과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과 공부를 마친 어른이 된 후에 했어야 하는 거였다.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라는 건 어쩌면 강박관념이다.
물론, 이별이 끝이 아니라 다른사랑을 위한 시작이라는 하나마나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이별은 사랑의 끝이 맞다. 몇 년을 연애했고 사랑했지만 한 쪽은 결혼을 원하고, 다른 한 쪽은 결혼할 마음이 없지만 헤어질 마음도 없어어 그냥 뭉개다가 나이만 먹고 헤어지는 커플들을 주변에서 꽤 보았다. 나는 결혼할 마음이 있고, 내 인생계획에는 결혼이 있는데 상대쪽은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생각을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한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하거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부터 다시 먹어야 한다. 그런 신념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은 연인이고,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과 한 사람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뿌리째 바꾸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세계관이 다른 사람과는 안만나는 것이 낫다. 연애를 하는 중에 결혼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헤어지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좋다고 얘기하고 싶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오래 연애를 했거나 나이가 꽉 차서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해서, 또 내가 생각하는 결혼과 배우자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고 깊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 결혼은 누구보다 깊은 확신을 갖고 결혼에 대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 하더라도 힘들고 어렵다. 버거워지기도 하고, 거기에 출산을 하게 되면 결혼에 대한 회의와 후회를 하게되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앞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했고 그 얘기들에서 비과학적으로 유추해보면 1정도의 행복과 4정도의 책임감, 그리고 나머지 5정도의 의무감으로 유지되고 꾸려지는 게 결혼생활이다. 자의적으로 결혼한 이들에게도 어려운 게 결혼생활인데, 등떠밀려서, 애인이 있으니까, 나이때문에 라는 식으로 타의적인 결혼을 해서 만족도가 높을 리 없다. 나와 연인이 책임을 나눠질 수 있는지,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인지, 경제적으로는 준비가 되었는지, 배우자의 가정환경은 어떤지, 내가 취하고 싶은 배우자의 장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점검해보고 질문을 던져본 뒤에라야 나의 결혼관에 대해 알게 된다. 그 때,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다.
질문을 던져봤을 때,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내키지 않거나, 혼자가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연애만 해도 된다. 실은 연애만 하는 삶이 꿀잼이다, 는 이유를 댈 수는 없고, 내가 결혼을 해서 얻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면 반드시 스트레스와 희생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최선의 선택은 하기가 힘들고, 상대방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반드시 싸움의 과정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포기와 체념을 해야하는 부분도 있다. 연애는 그렇지 않다. 상대의 장점만을 취하면서 나도 적절히 노출하고(?) 싶은 부분만을 오픈하면 되기 때문에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결혼과는 비교가 안되게 가볍다. 정 마음에 안들면 헤어지면 그만이다. 요즈음 티비를 보면 연예인들 중에서도 연애만 10년이 넘도록 하는 커플을 어렵지 않게 보는데, 속사정이야 둘만 아는 것이겠으나 딱히 둘은 결혼생각이 없어보이는데도 행복하고, 무탈하게 연애를 이어가는 듯 보인다. 왜 나는 몰랐을까. 왜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선배든 언니든, 나에게 조언을 해줄만한 누군가가 나에게 한명이라도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을 해주었더라면 내가 서른을 넘기기 전에는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며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을까, 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결혼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질문들을 지금에 와서 던져보면 답은 ‘아니오’ 다. 결혼도 내가 이어가는 사랑의 미래에 속하는 수많은 모습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반드시 종착지가 결혼은 아니므로 깊은 고민과 생각을 통해 나를 마주하고 답을 내리기 전에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혼인 이들에게 물으면 열에 열하나는 꼭 이 말을 한다. “젊을 때 이사람 저사람 많이 만나봐라” 이건 소위 말하는 문란한 연애를 부추기는 게 아니다. 다양한 사람을 겪어보며날 것의 자신과 여러차례 직면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말이고, 결혼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진심이 담긴 뻔한 충고다. 결혼을 일단 한 뒤에는 뒤돌아봐서는 안된다. 추억할 수는 있고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수준을 넘어서 결혼에 대한 회의과 후회로 내가 애써야 하는 부분들과 역할을 소홀히 하고 앞으로의 시간을 좀먹고 에너지를 낭비한다면 나에게도 배우자에게도 그만한 불행이 없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결혼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과 생각, 다양한 질문과 답변, 방황과 유예가 허용되는 유일한 시기인 ‘결혼전’ 에 많은 걸 해봤으면 한다. 옳고 그름이란 없고, 내가 어떤 답을 내렸다고 해서 아무도 거기에 이래라 저래라할 권리는 없다.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결혼에 대한 고민을 해보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 뒤에 결혼을 하든 안하든 선택을 내릴 수 있는 현명함이 생긴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다. 물론 결실일 수도 있다. 서로에게 100%인 상대를 만나 혼자일 때보다 더 행복해진다면 그만한 축복도 없다. 그러나 모든이의 사랑이 결혼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답은 없다. 오히려 사랑의 결실이라면, 여러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거기에 답해가는 과정, 그 과정중에 이미 열매는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