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지옥만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지옥이 있다. 사방이 커다란 장벽으로 막힌 것 같은 답답함 속에서는 제대로 숨쉬기조차 힘들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꽉 막힌 것일까, 아니면 내 시야가 좁아진 탓에 못 찾는 걸까?
고등학생인 선우(방효린)와 나미(오우리)도 지옥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선우와 나미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건 동급생인 채린(정이주)이다. 채린은 선우가 전학 오자마자 학교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 선우의 생일파티를 해준답시고 케이크를 얼굴에 뭉개버리고, 헛소문을 퍼트려 괴롭힌다. 나미는 부하처럼 데리고 다니다 자신의 가정사를 들키자 왕따로 전락시켜 버린다.
이렇게 선우와 나미의 인생을 밑바닥으로 추락시킨 후, 채린은 서울로 떠나버린다. 하지만 채린의 남은 친구들은 여전히 두 아이를 괴롭힌다. 망가져 버린 일상을 견디지 못해 선우와 함께 자살하려던 나미는 목을 매달기 직전 채린이 유학을 준비하며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화가 난 나미는 죽으려던 걸 미루고 선우와 함께 채린에게 복수하러 서울로 떠난다.
그러나 막상 만난 채린은 효천선교회라는 수상한 종교단체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종교는 봉사나 회개, 용서를 통해 상점을 매기고 일정 기간 내에 1위를 한 사람은 '바시아누'라는 낙원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채린은 용서 점수를 얻어 1등 자리로 올라서기 위해 선우와 나미에게 자신을 용서하여 '구원'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선우와 나미는 당황한다.
진정한 구원의 기회는 선우에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선우와 나미는 복수에 성공했는지가 가장 궁금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복수는 성공했다. 하지만 기존 영화에 나오는 복수의 문법은 아니다. 그들은 채린의 얼굴에 칼을 그어 평생 가는 흉터를 남기려 시도한다. 하지만 겁이 많고 여린 탓에 칼을 그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오히려 안심했다. 직접 손에 피를 묻혀 복수한다면 과연 선우와 나미의 속이 시원했을까? 그들이라면 오히려 또 다른 죄책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망친 채린의 인생을 통째로 망가뜨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기스를 내는 것이 목표였던 아이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채린 인생의 기스내기 작전은 성공했을까? 영화의 후반부에서 채린은 목사 명호(박성훈)와 점수를 짜고 친 정황이 발각돼 종교 사람들에게 고문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채린은 칼로 얼굴을 길게 베였다. 채린 자기 자신이 불러온 권선징악이다.
진정한 복수는 선우를 통해 이뤄졌다. 나미와 선우는 처지가 달랐다. 나미는 채린과 한때나마 친구였지만, 선우는 전학 오자마자 괴롭힘을 당한 입장이다. 당연히 선우가 삶을 이어 나갈 의지가 더 희미했을 테고 채린에 대한 거부감이 더 심했을 터다.
사람이 진짜 죽고 싶을 때는 식욕도 없어진다. 나미는 목을 매달기 직전까지 당 떨어진다며 젤리를 입에 넣지만, 선우는 단 거 싫어한다며 나미가 준 젤리를 거절한다. 그런 선우가 처음으로 배고프다고 말했을 때는 채린이 두려운 존재가 아닌 하찮고 약한 인간이란 걸 깨달은 후다. 날 지옥으로 몰아놓은 인간도 별거 아니라는 것. 내가 쟤보단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이것이 선우만의 진정한 복수가 아닐까.
다시 돌아간 현실에서 버틸 용기
복수를 위한 모험을 떠나는 동안 두 주인공은 교복을 입고 있지 않다. 교복을 입는 공간인 학교는 그들에게 지옥이다. 하지만 사복을 입은 선우와 나미의 여정은 미지의 세계로 초대된 동시에 자유로움도 동반된다. 괴롭히는 친구들이 없는 공간에선 나미와 선우는 처음으로 학생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웃으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길거리에서 군것질도 한다. 수학여행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대신 복수를 마무리하고 그들만의 불꽃놀이를 한다. 정식 수학여행은 아니지만 어떤가. 나미와 선우는 그 누구보다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임오정 감독은 프랑스의 혁명 구호에서 <지옥만세>의 제목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는 지옥 속에서 오히려 더 불타오르는 혁명적인 기운을 의미한다. 선우와 나미도 지옥 속에서 복수에 대한 열망으로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불꽃을 태웠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까지 얻었다. 모험을 끝내고 원래 자리로 돌아온 그들은 다시 교복을 입어야 한다. 그들에게 교복은 여전히 갑갑하겠지만, 그래도 죽음을 미루면서 제자리를 버틸 만한 용기는 생겼다.
내 삶에서 여러 개로 뻗어나간 갈래는 강줄기처럼 한데 모여 큰 바다가 된다. 다 메마른 강줄기 중 단 하나라도 흐른다면 그것은 내 삶의 바다가 될 수 있다. 가족이, 학교가, 회사가, 아니면 공동체 생활 그 자체가 지옥이라도 다른 세계에서 위안을 얻으면 된다. 나미와 선우가 서로에게 그런 것처럼, 오아시스가 있을 수도 있다. 죽음을 하루라도 미루면서 이 지옥을 향한 복수에 한 발 더 다가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