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도하 Oct 06. 2023

무심한 행복조차 방황한다면

방황하는 그 순간도 행복하다


행복은 참으로 오만하다.


고작 두 글자지만, 그 두 글자가 가진 힘은 막강하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매일같이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행복하기 위해 맛있는 식사를 먹고, 행복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행복하기 위해 유튜브를 켠다. 꼭 아주 거대한 행복이 아니더라도,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위해 우리는 살아간다. 무엇을 수단으로 삼든 결국은 행복하고자 살아간다.


하지만 그 행복은 참으로 멋대로라 나는 쉽게 휘둘리고야 만다.

행복은 작은 일 하나로 나를 저 바닥으로 내려놨다가, 아주 작고 또 작은 일 하나로 나를 다시 구름 위로 붕붕 띄어 올린다. 월요일 아침부터 폭탄처럼 투하되는 수많은 업무 메일, 비가 많이 올 줄 모르고 신고 나와 다 젖어버린 운동화, 눈앞에서 놓치고만 지하철은 나의 기분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행복은 이리도 쉽게 응어리진다.


그러나 행복은 역시나 멋대로라 난 또다시 쉽게 나풀거리고야 만다. 퇴근하고 나오자마자 회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탔다면, 횡단보도에 서자마자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면,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가 너무나도 나의 취향이었다면. 행복은 틈도 없이 커져버린다.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다 같이 캠핑에 갔다. 최근 너무나 정신없이 일만 하다가 오랜만에 맞은 긴 휴식에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기분이었다. 겨울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이번 게임은 누가 졌는지, 오늘 먹은 소고기 부위 중 어디가 제일 맛있었는지. 오랜만에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떠드는 휴식이 참으로 소중했다. 유난히도 소중했다.


행복은 참으로 오만해서 '너무 힘들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되어서야 나의 잔잔하고도 무심했던 행복을 돌아보게 된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이토록 소중했음을 다시금 느껴지게 만든다.


버거운 순간에서도 우리의 일상에서는 행복이 일어나고,

온통 고민밖에 없는 순간에서도 행복은 찾아온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과, 그 안에 있는 수많은 행복들.

그것을 누리는 것조차 힘에 겨워 어찌할 줄은 모르겠다면,

조금은 느릿하게 한 걸음 멈춰서는 것은 어떨까.

그럼 아마도 너무도 빠르게 달리다 놓쳐버렸던 수많은 행복들이 자신을 봐달라고 아우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퇴근 후 개운하게 샤워하고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는 것도,

오랜만에 소중한 친구를 만나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는 것도,

한 달에 한 번씩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 식사 한 끼 먹는 것도,


모두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행복들.

그동안은 스쳐 지나갔던 나의 무심한 행복들.


요즘 새로운 업계로 이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준비해야 할 일도, 처음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 할 이직서도, 할 일이 산더미지만 다시 해보자는 생각에 조금 기운이 나기도 한다. 사실 아직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직을 준비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바빠지는 회사에 야근은 야근대로 많아질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내가 지금 고민할 수 있다는 것.

내게 고민할 선택지가 있다는 것.

내가 더 좋은 나의 삶을 위해 나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


그래, 이 모든 것도 꽤 행복한 일이었다.


감사함 한 움큼, 소중함 한 움큼.

한데 모아 조금 더 성장한 시간들.

점차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무척이나 느끼는 요즘이다.




이전 13화 퇴사 욕구가 차오를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