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은 꽤나 절망적이다
입사한 지 약 1년 3개월.
고작 1년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요즘 나의 퇴사 욕구는 100%를 넘어섰다. 예전엔 이직할 곳을 찾고 나서 나가야지,라고 했던 마음이 요즘엔 이직이고 뭐고 그냥 바로 그만두고 싶다, 수준까지 올라왔다.
일이 힘든 것은 크게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젊었을 때 커리어를 위해 바쁘게 살아보는 건 꽤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의 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연봉, 야근과 연차로 눈치 주는 팀장님, 더불어 팀장님의 말버릇은 퇴사 욕구를 갈수록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12월 중순까진 꽤나, 아니 정말 정말 바쁠 예정이다. 갈수록 바빠지는 일에 몸은 이미 여기저기 아프다. 병원도 몇 군데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가장 힘들 후반으로 접어든 프로젝트를 여기서 그만둔다면,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일은 모두 다른 팀원들에게도 돌아갈 것이었다.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다음 이직을 위해서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다들 이런 마음으로 버티고 있을 텐데 팀장님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팀원들의 사기를 그대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다들 많이 힘들고, 버티기 어려우면..."
한창 회의가 끝날 타이밍에 팀장님이 말을 꺼냈다. 당연히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그래도 열심히 잘해보자, 너무 힘들면 자기한테 와서 말해라 등의 말을 기대했다. 고작 말뿐이라도, 말의 힘이 꽤 크다는 걸 우린 아니까. 하지만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팀장님은,
"3개월만 있다가 퇴사하세요."
라는 정말 팀장의 자격은 던져 버린 말을 해버렸다.
요즘 회사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인생 전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회사에 대한 정이 갈수록 떨어지니, 내가 일을 하고 있는 업계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올라온다. 결국 이런 회의감은 그럼 나는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물론 답은 없다. 이쪽 일을 하고 싶어서 도전한 길이었는데 갈수록 이게 맞나?라는 수백만 가지 물음표만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학교를 다니고, 취업 준비를 할 때는 힘들어도 괜찮았다. 불합격의 글자가 주구장창 떴을 때도 괜찮았다. 불합격은 잠깐의 떨어짐과 아픔이었을 뿐이다.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패배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어떡해? 해내야지.
해내야 하고, 나는 해낼 사람인 걸 알았다. 그래서 늘 목표를 세우고 도전했다. 도전은 즐겁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는 것은 더 즐거웠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그다지 열정적이지 못하다.
스물 후반이 되어서 다시 새로운 길을 시작해도 되는 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숨만 쉬어도 나가는 줄줄 새는 게 돈인데 이건 어떻게 하지?
스물 후반이 되어서 맞이한 인생 고민은 너무 어렵다. 책임질 일이 많아진 나이라는 건 용기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 바로 20일 전에 올렸던 브런치 글에선 그래도 '조금 더 나를 챙기고 마음의 여유를 챙기는, 똑똑한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라고 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라는 고민만 했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과 무력감이 나를 지배한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원망하지 않아야 할 텐데. 조금은 무섭기도 하다. 나의 30대는 얼마나 멋질까?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나의 30대를 위해서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어려움과 방황도 결국엔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온전히 이 절망감에 휩싸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은 단 하나. 지금 나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시 올라오는 것. 이 감정을 다시 나아갈 원동력으로 쓰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인생 전체가 어둠으로 휩싸이는 패배감은 꽤나 나를 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