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도하 Sep 03. 2023

처음으로 열심히 살기 싫어졌다

열심히 살수록 보람은 없어진다



나는 꽤 열심히 사는 인생을 좋아한다.


강박이라면 강박일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내 인생은 그랬다. 부모님, 선생님, 친척들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아이.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그런 학생. 초등학생 때는 영재 시험도 두 번이나 보러 갔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늘 최상위권 성적으로 다녔고, 졸업했다. 중학교 졸업식에선 그 해 졸업생 중 성적이 좋은 학생 3명만이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을 수 있었다. 2012년 2월에 있었던 중학교 졸업식에서 나는 부모님의 어깨가 뿌듯함으로 잔뜩 올라가게 해 드렸다. 칭찬을 들을수록, 인정받을수록 나는 늘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커져갔다.


그래서 나는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내가 그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내가 처음으로 이러한 칭찬과 인정이 부담으로 느꼈던 것은 엄마의 핸드폰에 저장된 내 이름을 볼 때였다.

나는 엄마의 핸드폰에 저장된 내 저장명이 그렇게 싫었었다.


‘OO희망’


내가 엄마의 희망이라는 게 너무 싫었다. 나는 그냥 엄마의 둘째 딸이고만 싶었는데, 엄마는 내가 엄마의 희망이 되라는 것 같아서 어렸을 땐 그 말이 그렇게 부담되고 싫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못된 딸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인가, 재수할 때인가. 입시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해졌을 때 나는 엄마한테 그 말이 싫으니 바꿔달라고 했었다. 엄마는 당연히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저장한 이름이겠지만, 마음이 꼬였던 나한테는 너무나도 미운 말이었다. 희망이라는 그 말 역시 나에게는 하나의 강박과도 같았다. 공부 잘하고 성실한 딸,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서 성공해야지. 숨이 한 번 콱 막혔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까지도 열심히 살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요즘 회사가 너무 바쁘다. 일의 특성상 올해 하반기는 이것보다 더 바쁘면 바빠졌지, 한가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7월 중순에는 월화수목금토일월화수목금 12일 연속으로 출근을 했었다. 저번 주에는 일월화수목금토 7일 출근을 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서 다행인 건가. 갈수록 바빠지니 이젠 자조적인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입사한 지 이제 고작 1년 2개월쯤 되었는데, 처음으로 퇴사 생각이 났다. 일만 바쁘면 괜찮을지도 몰랐다. 회사가 이렇게 바쁜데 야근하지 않는다고 눈치 주는 팀장만 보면 열불이 터진다. (다들 바쁘면 알아서 야근하고 주말 출근한다. 그제는 불러서 추석 때 놀러 가는 사람 없냐며, 내가 비행기표 취소하라고까지는 말 못 하고.. 허허 웃는데 진짜 나중에 저런 늙은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팀장님 때문이라도 빡쳐서 개천절까지 푹 쉬다 나올 거다.)


이렇게 바쁜 회사를 보며 나는 요즘 생각이 꽤 많아졌다.


나는 요즘 처음으로 열심히 살기 싫어졌다.

어렸을 때의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것일까?

나는 열심히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너무나도 계획적인 사람이라 매일매일 무엇을 할지 우선순위로 모든 일을 적는다. 그리고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갈 때 꽤나 큰 쾌감을 느낀다. 대학교와 대학원 시험 기간에는 할 일이 정말 너무나도 많았었다. 대학교 때는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소설 집필로도 할 일이 잔뜩 쌓여있었고, 대학원 때는 논문과 취준으로 매일 바빴었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적도 많았지만 바쁜 날들이 스트레스인 적은 없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게 힘들었을 뿐이지 바빴던 것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나는 참으로 웃기게 ‘바쁜 나’에 취해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열심히 사는 내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으니.


하지만 요즘 나는 아닌 것 같다. 잔뜩 쌓여가는 할 일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인생이 재미도 없다. 뭘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지도 모르겠다.


난 요즘에서야 나를 다시 고민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왜 나에게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걸까?

왜 학창 시절에는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지 않은 걸까? 왜 다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한 걸까?

열심히 살고 나면 그 결과는 결국 회사에 취업해서 회사를 위해 매일 야근하는 건가?


나는 요즘 처음으로 열심히 살기 싫어졌다.


아니, 나는 이제 ‘나’를 위해서만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답은 여전히 알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온 이 길을 한 순간에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겁이 많은 나는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한순간에 부정할 수도 없다.


아직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내가 고민한 바로 얻은 답은 내가 열심히 살아서 ‘나’의 가치를 올리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것이다.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올해 일을 잘 마무리하고 나면, 이번 경력은 꽤 가치 있는 일이라 아마 이직할 때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이것 하나만 보고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바쁘게 일하다가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다. 팀장의 빡치는 갈굼을 볼 때마다 속에서 불이 나는 것도 좀 다스릴 필요가 있다. 조금 더 나를 챙기고 마음의 여유를 챙기는, 똑똑한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


인생에는 고민할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처음 가보는 길이 너무 많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건가요?






이전 11화 두 번째 스물일곱 생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