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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하 May 07. 2024

어쩌다 보니 집이 세 개

신경 쓸 것도 세 배로 늘어난 기분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한 후, 본가에서 출퇴근을 했던 두 달간은 정말 난리의 난리가 연속인 날들이었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출근하러 집을 나섰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여덟 시 반이 다 되어갔다. 평일에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말도 주중에 쌓인 피로에 허둥대다 시간을 얼레벌레 보내기 일쑤였다. 어렸을 적 허리 수술을 한 나는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운동은 꼭 해야만 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출퇴근에 파묻혀 집에 오면 기절을 하고 마는 하찮은 체력은 운동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대로는 안돼.


결국 이 생활을 참다못한 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브런치에 발행했던 바로 이전 글인 <새벽 여섯 시 반 출근>을 발행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백기를 들 줄은 몰랐다. (몰랐으니 투정은 그만 부리자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었겠지.) 어떻게든 잘 견뎌내자고 했건만, 허리 진통제를 며칠 달고 산 뒤로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나는 결국 이직한 곳 근처에 딱 평일에만 잠자는 용도로 집을 구했다. '집'이라기보다는 '방'에 더 가까운 개념이었다. 사실 거창한 집은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하여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 퇴근하고 다음 날은 새벽같이 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월화수목을 빡세게 일하고 나면, 금요일부터는 꽤 자유로운 주말을 누릴 수 있었다.


거기에 회사와 새로 구한 집의 거리는 도보 10분. 아주 만족스러운 출퇴근길이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아주 크나큰 일이 남아 있었으니.


청천벽력 하게도 이직하기 전 서울에 살던 자취방을 아직 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세 계약 기간을 약 1년이나 남긴 자취방. 두 달 전에 방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서울 자취방과 이직한 곳 근처의 집. 나는 이중으로 돈을 낼 수밖에 없었다. 돈을 한창 열심히 벌고 저축해야 하는 이십 대 후반의 직장인에겐 꽤나 가혹한 지출이었다. 물론 작고 소중한 월급이라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거기에다 엄마께선 이제 다시 본가에 들어왔으니, 생활비를 내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물론 아주아주 적은 금액이긴 하다.) 학교도 졸업하고, 직장도 갖은 직장인에게 본가는 어렸을 적과 같이 돈 한 푼 안내며 부모님의 그늘 아래만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치가 보여 가끔씩 시키는 배달 음식이나 소소한 생필품은 내 돈으로 주문하게 되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이중으로 집세를 내는 게 꽤 불쌍해 보였는지, 서울 자취방이 빠지면 받겠다는 매우 천사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무튼 나는 갑작스레, 정말 어쩌다 보니 집이 세 개로 늘어나버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한두 살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대학원을 다닐 때나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직이나 이사에 대해 깊은 생각이 없었다. 특히 이사는 뭐, 이직을 하거나 계약 기간이 끝나면 몇 번이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었다. 짐도 그다지 많이 없었기에 할 수 있던 생각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본가의 내 방엔 여전히 나의 여럿 짐과 가구들이 있었고, 나의 자취방은 정말 회사를 다니기 위한 또 하나의 보금자리였을 뿐이니.


하지만 직장 생활 3년 차에 들어선 지금. 슬슬 '안정'에 대한 욕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회사를 더 이상 이직하고 싶지 않다는 욕구. 이사보다는 맘 편히 쭉 살 수 있는 나의 집이 있었으면 하는 욕구. 이러한 새로운 욕구들이 슬그머니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슬슬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이젠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벅차서 그런 걸까? 아님, 정말 어쩌다 보니 집이 세 개인 지금의 상황에 처해서일까?


물론 이번에도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로만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새로운 욕구가 생겼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것을 언제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 역시 알 수 없다. 알아도 지금의 나로선 실행하기 어렵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목표를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하는 것.

그럼 그 목표를 이루는 길은 언젠가의 내가 어떻게든 찾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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