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최선의 선택만을 고집하던 나 자신에 대한 성찰
심즈라는 인생 시뮬레이터 게임이 있다.
처음에 시작하면 집과 가구가 좋지 않아 불이 나거나 수리를 자주 해주어야 한다. 이를 고치는 데에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가구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찰나 어떤 부자들이 사는 동네를 보게 되었고, 그 집에 들어가서 좋은 가구와 수영장, 그리고 멋진 디자인의 장식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냥 이 집을 사면 되겠는데?' 그런데 집을 사려고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나는 가상 인생의 첫 번째 목표를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정했다. 집을 사고, 좋은 가구를 산다면 캐릭터의 삶이 좀 더 나아질 것 같았다.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구했다. 다양한 직업군이 있지만, 직급과 직업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돈이 천차만별이었고, 나는 그중 가장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을 선택했다. (의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프리랜서처럼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부업도 찾아보았고 그림을 팔면 돈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돈 벌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직급을 빠르게 올리기 위해서는 일에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했는지를 기준으로 책정되는 게이지를 채워야 하고, 또 특정 능력 (지능, 카리스마 등)을 어느 지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최대한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가는 시간에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기' 버튼을 클릭하고, 집에 돌아오면 기본욕구만 해결시킨 뒤 능력개발과 부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계속 노가다를 시킨 뒤 모든 능력치와 직급, 그리고 부업에 관한 능력까지 멕스를 찍고 나면, 일은 잘리지 않을 정도로만 시키고, 남은 시간은 부업에 몰빵 해서 돈벌이에 집중했다. 오른 그림 실력 덕분에 그림은 잘 팔렸고, 나중에는 본업보다 부업이 더 돈을 많이 준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그림을 계속 팔아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집을 사기 위한 충분한 돈이 모인 나는 마을에 가장 좋은 집을 일시불로 구매했다. 큰 3층짜리 저택에 캐릭터 혼자 살고 일도 할 이유가 없어지니 가족을 만들어 보았다.
처음에는 집안에서 여럿이 살게 되니 일도 분담해서 하게 되고 해서 좋았지만, 그 다음인 아이가 자라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다른 콘텐츠에도 눈을 돌려보기도 했지만 돈도 못 벌고 능력 게이지가 오르지 않는 것들은 왠지 조금 하다가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 더 하다 보니 의미없는 일의 반복이었고, 게임이 참 재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시뮬레이터 속의 캐릭터 같은 삶을 나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정말 안 좋은 습관이 있다.
평소에는 어떻게든 참고, 하기 싫은 일을 해낸다. 참 오래, 그리고 끈질기게 집중하던 버릇은 그만큼 나를 성장시켜 주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만큼 나를 병들게 해 왔던 것 같다. 언제나 "중요한 것 먼저"와 효율을 따졌던 나는 하나에 집중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을 버려버린다. 그런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였고, 졸업 이후에는 대학원에서 연구업적을 쌓고, 내 몸값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런 습관은 일을 완수하는 데에는 정말 좋은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일이 끝나고 나면 공허하고, 오랜 기간의 번아웃을 유발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구에 시간을 쏟았고, 자기 전에 실험 결과를 보고 싶어서 새벽까지 작업하니 밤낮이 바뀌고 패턴은 끊겼다. 논문 제출일이 다가오면 잠깐 시간 낸다고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다니던 운동마저 잘 가지 않게 되고, 집안 행사나 친구를 만나는 일 등은 몇 달 동안 미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성과도 많이 이뤘지만 누적된 스트레스와 실패에 대한 부담감과 집착이 생기게 되고, 안 좋게 사는 생활 습관이 몸에 녹아들어 표정은 굳고, 삶의 질은 떨어진 상태로 유지되었다. 가끔 유튜브에서 '동기부여' 영상이 나오는데, "미친 듯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일이 끝난 뒤 집에 와서 밀린 빨래와 개털처럼 관리된 머리. 나빠진 피부상태를 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문득 외로움이 밀려오고, 정신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심즈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살다 보면 미래가 뻔히 보였다. 나의 '최적의 선택하고 살기'라는 망상은 분명 언젠가 나에게 공허감을 안겨줄 것이고, 내 인생에 찾아올 수 있었던 다채로운 색깔의 기회와 경험들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자유가 있는 인생 속에서 단 하나의 콘텐츠. 성공과 성취, 인정만을 보고 사는 인생에 나는 끝이 정말 재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바뀌어 보고 싶다. 물론 이렇게 사는 방식에 중독된 지금 이를 쉽게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많은 해결 방법이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지금 그중 하나인 글 쓰기를 하고 있다. 솔직함 때문에 조금은 부끄럽지만, 내 경험의 공유가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살았던 또 다른 사람이 있구나' 로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짧은 길도 돌아가보고, 축제나 행사도 기웃거려 보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