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절의 서랍을 열면 무엇이 쏟아져 나올지 알 수 없다
글 쓰는 일을 오래도 쉬었다.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품고만 있었다. 이전처럼 세상과 사회에 던지는 글을 쓰느라 소모하기보다는 내 안에 가라앉아 묵어있는 유년의 기억을 이야기로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거의 일 년이 되었다. 쓰고는 싶은데 보이는 곳에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디 어두컴컴한 구석진 곳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싶어서 두어 달 정도 일기를 썼다. 일기는 쓰면 쓸수록 갈증이 난다. 하루 종일, 한 달 내내도 쓸 수 있을 것처럼 느껴져 어느 순간 연필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게 된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 한 다섯 시나 다섯 시 반쯤 유령처럼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물을 한 잔 마시고 서재 방의 따뜻한 조명을 켠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잠시 심호흡을 한다. 11월 초부터 쓰기 시작한 모닝페이지는 어느새 세 번째 공책의 중반쯤 이어지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뭐든지 써 내려가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글쓰기지만, 한 달이 넘어가면서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묻어 버리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변죽만 울리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슬프고, 아프고 때로 처참해서 그중 일부라도 갑자기 떠올라 마흔다섯 살의 나를 공격하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묻어둔 기억이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올까 봐 저어하면서 조심스럽게 쓴다.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은 매일의 계획, 매일의 다짐, 매일의 감정을 쓰는 용도로만 모닝페이지를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했던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쓸수록 유년 시절의 기억은 조각조각 튀어나와 현실의 나를 찌르고 베고 할퀴었다.
그날의 미션은, 어릴 적의 방을 묘사해 보고, 그 방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떠올려 본 후, 그 좋았던 것을 지금 내 방에 선물하라는 것이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유년은 순수하고 즐거우며 행복했던 시절이었겠지. 순수하고 따뜻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성인이 된 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줄 것이다. 나는 이 미션을 앞에 두고 모닝페이지를 쓰다가 기억의 습격에 쓰러져 오열했다. 남편과 딸아이가 다른 방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새벽 작은 방에서 홀로 노트를 쓰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숨죽여 울부짖다가 코를 풀었다.
어릴 때 거의 방을 가져본 적 없다. '어릴 때 살았던 집'이라고 하면 네 식구가 웅크려 자던 단칸방, 밤새 장맛비가 들이쳐서 물바다가 되었던 반지하 셋방, 큼지막한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차마 처치하지 못해 바라만 보던 나, 교양머리 없고 돈 몇 푼에 악을 쓰던 이웃들, 지저분한 골목과 깜빡이는 가로등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가족이 다 같이 잠들던 단칸방에서 아빠, 동생, 엄마, 나 이렇게 누워서 잤는데 아빠와 엄마가 동생 쪽으로 몸을 돌리고, 나는 혼자 벽을 보고 잠들었던 기억 같은 게 난다. 아마 그때 엄마와 아빠의 생각으로 나는 아빠 옆에 눕기엔 너무 큰 딸이었을 것이지만, 너무 어릴 때도 '큰딸'이었다는 게 문제다. 동생이랑 같이 '애들 방'을 따로 가져본 적도 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엄마가 문을 벌컥벌컥 열고, 동생과 모든 것을 공유했던 방이라 내 방이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가족들 사이에서 내 방을 온전히 따로 가진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였는데, 평생을 언니와 함께 방을 쓰는 걸로 알았던 동생이 종종 베개를 들고 쳐들어와 같이 자자고 졸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너무 싫어서 울면서 제발 혼자 자고 싶다고 말해도 동생이 비집고 들어와 같이 울었다. 단칸방에서 자란 동생은 성인이 되어서도 혼자 자려면 무섬증을 겪었던 것이다. 가끔은 소름 끼치도록 싫다는 기분을 억누르며 동생과 함께 '내 방'에서 잠을 잤다. 이 방은 내 평생 유일한 '내 방'이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물건은 없다. 최초의 내 방이 있던 이 집은 아빠가 무리한 대출로 산 신축빌라였고, 2년도 안 되어 이 집에서 쫓겨나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 집에 2년 간 살았던 대가로 나는 대학 졸업 후 5년 동안 4천만 원의 빚을 갚아야 했다. 평생 유일하게 내 방을 가져본 대가는 혹독했다. 이 빚을 왜 내가 갚아야 하냐고 물으니 아빠는 '너도 같이 살았잖아'라고 말했다. 그런 아빠를 내가 사랑한다는 게 문제다.
내 방이랄 것은 없었어도 어린 시절 내가 애착을 가졌던 것은 아마 책 몇 권이었을 것이다. 책 읽는 시간은 오롯이 내 시간이다. 아무도 그 시간을 침범할 수 없었고, 책 속 세상을 누비고 상상하는 동안은 현실의 단칸방이 아니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혁명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거나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금서를 읽고 있거나 사교장에서 멋진 남자에게 함께 춤추자는 손길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책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내 모든 물건을 탐내는 동생조차 내 책만은 탐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책을 탐냈다. 가난한 우리 집에는 읽을 것이 별로 없었는데 심심하면 달력에 쓰여진 글씨들을 읽거나 포장지로 사용되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신문지를 읽었다. 달란트를 얻기 위해 성경을 읽었고,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가며 혼자 배웠다. 교실 뒤에 마련된 학급문고는 전용 책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서 대여점에서 빌려온 책 중 너무 재밌는 책은 돌려주기 싫어서 반납하지 않고 있다가 이사를 해 버렸다. 사촌들이나 친구들의 집에서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삼촌과 외숙모의 책장에서 어른들이나 읽을 소설을 발견해 몰래 읽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읽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었고, 그저 책만 있으면 조용한 아이로 여겼다. 나는 남들은 재미없어하고 관심도 없어하는 취미를 갖고 그 안에서 만큼은 아무런 간섭이나 훼방 없이 평안히 지냈다.
이사를 너무 많이 해서 아끼던 책들을 버리거나, 다른 집에 줘 버리거나, 도서관에 '기증'한 적도 여러 번 있다. 내 방이 있었던 최초의 집에서 쫓겨나 원룸으로 이사하던 날 그즈음 새로 생긴 인천지하철 1호선 동수역에 그때까지 모은 책 50여 권을 기증했다. 그리고 동수역에 전철을 타고 내릴 때마다 그 지하철 만남의 광장 책꽂이에 꽂힌 내 책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그래, 집에 있으면 나 혼자 읽는 건데 공공도서관에 있으면 여럿이 읽을 수 있으니 좋은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책을 읽지 않는다. 내 책은 오랫동안 거기에 있었다.
지금 내 방에는 책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읽고 싶은 책은 반드시 사고, 우연히 읽은 책 중에 좋은 것은 반드시 사서 소장하는 게 버릇이다 보니 책장을 늘려도 책은 계속 쌓이고 넘친다. 내 방 서재는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데, 남편이 운영하는 학원의 교실 한 벽면에도 내 책이 가득 채워져 있고, 내가 잠시 작업실로 쓰던 부모님 집의 방 한 칸에도 내 책이 가득하다.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하고, 남들처럼 전자책으로 갈아타볼까 시도해 본 적도 있지만 나의 책 소유욕은 내가 잘 안다. 전자책으로 재밌게 읽은 책이라면 반드시 종이책으로 사서 책장에 꽂아놓고 말리라는 걸.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내 방은 없었어도, 내가 좋아한 물건은 있고, 나는 성인이 된 후로 내내 내 방에 그것을 채워 넣는 것으로 어린 시절의 궁핍을 보상받으려 했다는 것을 알겠다. 책상에 앉아 원고에 집중하다가도 잠시 몸을 좌나 우로 돌려 색색깔의 책등을 바라본다. 책등에 박힌 제목마다 추억이 떠오르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워진다. 지금은 내 방이 있고, 그 방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미션은 이미 완성된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쓴 지 한 달이 한참 넘어서야 모처럼 진짜 기억이라는 것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기억의 습격을 오롯이 받아내며 그때의 나를 만나고,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이해했다. 어린애처럼 울고 고통스러워하며 새벽 시간을 보낸 후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나서 거실에 불을 켰다. 자기만의 물건으로 둘러싸인 자기 방, 자기 침대에서 잠든 딸을 깨워 학교에 보낼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