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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May 22. 2023

손가락 굳은살은 엷어지고

산골 일기

손가락 굳은살은 엷어지고


산골 촌닭(?) 모처럼 서울 가는 날,

KTX 평창역에서 서울역 가는 빠름 열차를 탔다.

그 옛날 타곤 했던 기차는 원하면 언제든 의자를 돌려 마주 보게 할 수 있었는 데, KTX는 마주 보기 의자는 4인석으로 따로 있으며 호실마다 있지도 않단다.

등받이가 한 방향으로만 되어있는 의자 폭은 그리 넓지 않고, 빨리 가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인지 좁은 편이다.


서울로 가는 열차(강릉행 열차도 마찬가지다) 안엔 사람이 제법 다. 평창을 지나 둔내, 횡성, 만종, 서원주, 양평, 상봉, 청량리를 거쳐 종착역 서울역이다. 드문드문 비어있던 자리는 잠깐씩 멈추는 역마다에서 임자가 나타났고,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낯설게 바뀌어갔다. 하지만 열차 안 풍경은 별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려내는 풍경은 많이 닮아있다.


귀에서 늘어져있는 줄과 하나씩 들고 있는 네모틀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가 열차가 멈출 때면 고개를 들어 바깥과 안을 한 번 빠르게 둘러본 뒤 다시 네모틀로 시선을 돌린다.

이윽고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 도착하기도 전 미리 짐을 챙겨 복도로 나가는 이들과 열릴 문 앞에 이미 서 있는 사람들도 있다. 여전히 네모틀을 꼭 쥔 채.


서울의 지하철 안 풍경은 더 닮아 있었다.

옆사람 앞사람 뒷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는 귀마개 소리줄과 네모틀이 들려있고 15도 각도의 시선을 고정시킨 모습들이 마치 개그 프로그램 같다.

내게도 네모틀이 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하나 되지 않고 싶어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혹여 네모틀이 지지지 지지지~~ 떨리진 않는지 손끝에 신경을 곤두세워 두었다.(에효!)


바깥으로 나갔다. 열차 안뿐이 아니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네모틀에 눈을 붙박아 두는 이들이 보였다.

걷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는 게 아니었다.

늙은이든 젊은이든 아이든 귀마개 소리줄과 네모틀이 한 몸이 된 듯, 네모틀 네모 세상이 둥둥 떠다닌다.


두꺼운 사전, 깨알 같은 글씨에 얇디얇은 종잇장을 넘기는 일은, '거북등에 털 나기' '토끼 머리에 뿔나기' 만큼이나 드문 일 되었다. 

친구든 가족이든 둘이 만나도 셋이 만나도, 넷다섯이 만나도 눈을 마주 보기보다는 (마주 볼지라도 틈틈이) 손바닥 안 네모난 것 보기를 틈마다 하고 있다. 

소통을 하기 위해 소통을 멀리하고 있는 셈이다.


나 또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끝 굳은살이 엷어진 지 오래다. 벗어나자니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고, 하루에 몇 번씩 잡고 있자니 네모틀의 종이 된 듯하고, 전화로 소식 묻자니 아무것도 아닌 일로 번거롭게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세상에서 혼자 결론 내려버리고는.


지금 손바닥 안 네모틀에 검지로 톡톡톡 쓰고(?) 있다. 지하철에서 본 풍경이 곧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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