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하고도 평창, 지금이야 2018년에 치른 동계올림픽 덕분으로 듣보잡 지역이 아니지만 그전에는 평창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봉평을 아는 이들은 더러 있었다. 봉평이라고 하면, "아, 막국수!" 하거나 더러는 "메밀꽃 필 무렵, 그 소설로 유명한 곳!"이라고들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 봉평은 1936년 <조광(朝光)>지에 실렸던 이효석 작가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곳이다.
이효석은 봉평에서 태어나 여덟 살에 평창읍으로 이사를 가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 뒤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고 경성제국대학 영문과를 나왔으니 사실 봉평이라는 깡시골 살이는 아주 어렸을 때였던 것. 그래서일까!
시골 풍경을 그린 "메밀꽃 필 무렵"이야기는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때의 봉평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닷새마다 열리는 봉평장에 오는 장꾼들 이야기며 그 가운데 나귀에 짐을 싣고 다니는 허생원의 하룻밤, 아니 달빛 좋은 어느 날 밤을 잊을 수 없어 펼쳐지는 이야기다. 달밤에 본 메밀꽃을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으로 그리며.
그리고 그렇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꽃 풍경은 오늘날 봉평이라는 작은 면의 평범한 장터 주변을 축제의 무대로 바꾸어 놓았다.
장터에서 멀지 않은 곳곳 여기저기에는 물레방아, 크고 작은달, 크고 작은 나귀, 허생원과 동이, 메밀꽃 모형이자리 잡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그 무대를 그려낸 작가를 본뜬 동상(銅像) 또는 흉상(胸像)도 문학관 뜰은 물론이고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고향이 봉평인)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년을 보내는 동안은 없었던 것들이다.
우리가 있던 곳 앞 뒤 풍경
어쨌든 평창군 봉평은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효석문화제]라고 쓰고 <메밀꽃 축제>라고 부르는 축제를 연다. 벌써 스물세 번 째다. 꽤나 오래됐지만 축제 속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지인들과 스윽 훑어보는 정도였고 그것도 몇 번 안 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그 축제장 속에 있게 됐다.
축제 조직위에서 부른 건 아니었고 부스 메꿈 식으로 어느 시인에게 제안이 들어온 걸 '혼자 해서는 안 될 일'로 여겨 그이와 인연 있는 작가들과 의논을 하였고, '소설가로 이름을 남긴 이효석이 태어나고 공부한 평창, 그 평창에는 메밀꽃만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후배들도 있다는 걸 봉평 효석문화제를 찾아온 이들에게 알리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문화제를 여는 날, 시인과소설가, 에세이스트 몇 명이 모였고 (지난해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곳에서 열흘을 보냈다.
올해는 인연이 없는 줄 알았다. 지난해 우리(작가)들을 보고 '내년에는 제대로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 약속했던 (축제 관련) 이들이 사퇴를 했거나 힘을 주지못(?)했는지 축제일이 다가와도아무런 연락이 없었기에.
그런데 시인에게 메꿈 식은 아니나 지난해와 비슷한 제안이 또 들어왔고, 지난해의 우리 활동(?) 경험이 바탕이 되어 무려 세 개의 부스를 맡게 되었다.
다만, 체험객들을 같은 면 안에 있는 예술관으로 안내를 해야 하는 조건이 따랐다.
장소 또한 지난해와 다른 메밀꽃 밭 안, 오거리 길 옆 네모 쇠기둥에 지붕 그리고 의자가 붙어있는 탁자가 하나씩 있는 곳이다. 여기까지 오려면 먼저 입장료를 내야 했다.
극단 '마음같이' 단원들
들어오는 곳은 두 군데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둘러볼 수 있는 갈림길이 또 있고 중간 지점에서 하나로 만났다가 다시 흩어지는 그 길목 옆에서 필사 체험 또는 만들기 체험을 안내하는 평창의 작가들과 작가들의 책을 둘러보며 잠시 쉴 수 있는 쉼터가 있었던 것.
책을 좋아하는 사람 또는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 또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가족이 들러 쉬어가는 쉼터지만, 처음부터 아예 피해 가는 사람들이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길도 네 군데나 됐고, 네 그루의 아름드리나무가 몇 미터마다 있고 작은 도랑물도 흐르는 곳이어서 메밀꽃과 어우러지는 꽃같이 예쁜 빛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나도 몰래 눈길이 가는 오거리 길목엔 하루에 두세 차례 같은 빛깔 같은 모양의 옷을 입은'극단 마음같이' 단원들이 개구쟁이들처럼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통놀이 줄넘기와 비석치기, 딱지치기, 사방치기를 권했다.
어른들은 추억의 놀이겠지만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이 익숙한 아이들에겐 낯선 놀이인 줄넘기, 비석치기, 딱지치기, 사방치기를 설명에 따라 한 번이라도 하면 대상에 맞게 길쭉한 풍선을 불어 만든 푸들 강아지, 꽃, 나비, 검 따위를 선물로 주곤 했다.
하루에 두세 차례씩 왁자한 그 옆에서 우리는 아니 나는 평소에 쓰지 않던 말 아니 쓸 일 없던 말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해야만 했는데...,
열흘 소풍 첫날은 우왕좌왕,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얼떨떨했다.(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