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다른 집과 달랐다. 할머니 말씀을 듣지 않으면 집안이 냉기가 흐르고 시끄러워졌다. 부모님도 할머니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포기하고 되도록 맞춰드리고는 했다. 그래야 집안이 평온해지니.
그날은 제사 준비로 정신없었고 집안이 분주했다. 한창 제사상차림을 부모님을 도와하고 있는데 만나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모상이라 했다. 그래서 장례식장으로 급히 가고 있다고.
문상객들도 많고 복잡할 거고 밖이 많이 어둡다며 꼭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말투에는 내가 와 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제사상차림만 돕고 장례식장에 다녀오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허락해 주셨지만 할머니는 반대가 완강하셨다. 이유는 제삿날에는 상갓집에 가는 게 아니라고.
부조금이라도 보내려고 했지만 여의치 못했다.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많이 서운한 것 같았다.
나도 어쩔 수가 없어서 난감하고 답답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어색한 시간을 가지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다시 사과를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잠깐이라도 들렀을 거야. “
그 말을 들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나도 언젠가 상을 당하면 연락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 우리 사이가 끝까지 가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고통이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집안 분위기도 생각하는 방향도 각 각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일에 대한 판단과 행동에 대해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상대방의 선택도 받아들이고 존중해 줘야 하지 않을까.
가을비가 오려나보다. 벌어진 마음이 시린 거 보면.
잎들이 떨어진다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꽃들이 지고 있다
귀를 닫고 있는 사이에
색이 바래간다
나를 잊고 있는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