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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푸른 Oct 06. 2023

진심에 대하여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엄마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남자를 만나야지. 내 부모처럼 우리 엄마를 생각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지.


우리 엄마는 내 또래의 친구들 엄마들이랑은 달랐다. 곱게 화장을 하고 핸드백을 매고 뾰족구두를 신고 다니는 엄마들과 달리 우리 엄마는 뽀글 파마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농사일하느라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일상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런 엄마가 창피했다. 우연히 집 앞에서 마주칠 때면 “할머니야?”하고 묻던 친구들의 말이 나를 슬프게 했다. 자식들 먹이고 키우느라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는데 겉모습만을 생각하는 내 모습에 더 실망스러웠다.


만나던 사람이 집 앞에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인사를 하고 문을 닫으려 했는데 저 멀리서 “잠깐만요.”하고 달려오는 엄마가 보였다. 일을 마치고 허름한 옷차림의 엄마를 본 순간 그냥 못 들은 척, 못 본 척하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올라갈까 잠깐 생각했다.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엄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급히 달려오는 엄마 얼굴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어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사람에게 소개를 했다.


“우리 엄마야.”

“엄마, 내가 만나는 사람이야.”


잠깐의 인사만 하고 나는 얼른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 버렸다.


그 이후에 그 사람과 엄마 얘기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 지도 않았지만 그 사람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맘도 드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그런 날들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훌륭하신 분들이야.”


뜬금없이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종종 자신의 속 마음을 다 얘기를 하지 않고 떠 보듯이 얘기를 할 때가 있었다.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부모님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얘기를 이어나가지 않았다.


사람을 대할 때 내 모습을 어디까지 보여주고 마음을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지 가늠을 하기가 힘들다. 힘들고 아픈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 줬을 때 약점이 되어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던지라 또 상처를 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서 방어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만날 땐 내 몸이 얼마만큼 안 좋은지 먼저 얘기해 주지 않았고 질문을 해도 두루뭉술 넘기고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숨기고 싶었고 건강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일들로 서로에게 오해가 쌓이고 믿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진심을 보여 주지 않으면 상대방도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단해지길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길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쳐도

이 또한 모두 지나가겠지


내가 서 있는 이 길에

어차피 지나가는 인연들이라면

흔들리지 말고

가벼이 지나치자


이 또한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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