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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2008. 4. 7. 16:48

by 김남수

몇 년 전 보았던 <감각의 제국>.

엊그저께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알게 된 '이세이 사가와'라는 인간(이하 또는 그 이상의 짐승).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감각의 제국>의 여인은 잦은 섹스로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 - 잦아져갈수록, 더욱 변태적이 되어 갈수록 오히려 멀어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에 대한 집착 - 를 섹스 도중 상대 남자의 목을 졸라 죽이고 성기를 잘라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채우려 한다.


스스로를 '카니발리즘의 대부'로 칭하는 '이세이 사가와'라는 인간은 프랑스의 소르본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다가 사귀게 된 네덜란드 여인을 '먹음'으로써 그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는 망상을 실행에 옮긴다.


욕망.

식욕, 수면욕, 성욕, 권력욕, 과시욕, 재물욕 등 인간삶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것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바로 이 욕망들로부터 삶의 고통이 비롯된다고.

때문에 예로부터 욕망을 제어할 것인가 아니면 승화시킬 것인가 따위의 궁극적인 고민들이 있어왔다.


근대적인 의식 속에서 욕망은 제어해야 할 대상이었다.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 규정하고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법에 근거한 사회적 계약을 하여 국가가 성립된다고 했던 홉스의 초기 근대적 국가관을 보더라도 이는 명백하다. 제 아무리 야경국가라 한들 치안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었고 이는 인간의 '야만적인' 욕망이 반드시 제어되어야 할 대상이었음을 말해주는 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의 의식과 생활양식을 틀지우는 구조가 생겨났고 그 구조를 벗어나는 것은 사회적 일탈행위로 간주되어 법의 쓴 맛을 보거나 평생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근대적 구조라는 것도 사람이 만들어낸 것일 뿐. 따지고 보면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생겨난 욕망의 역사에 비해 근대적 구조의 역사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때문에 욕망은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이고 어찌보면 현대조차도 근대적 구조라는 외피로 포장된 욕망의 역사일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꽤나 반듯하고 멋있는 이미지로 포장한 채 자신의 적나라한 본성을 숨기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러한 자아 분열적 행위에 스스로 괴로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방식이라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한 쪽 발은 진창에 한 쪽 발은 맑은 물에 담근 채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는 거다.


<감각의 제국>의 여인이나 '이세이 사가와'라는 인간의 경우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엽기적인 캐릭터로 생각할 여지가 많다. 사람을 살해한 행위 자체는 분명히 비난 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더군다나 성기를 자른 것이나 인육을 먹은 것 처럼 그 방식도 상상을 뛰어넘지 않는가. 사람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섹스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사람의 육신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낳는 과정. 요새 그 흔하디 흔한 포르노 영상들을 보면 '널 먹고 싶어' 따위의 대화가 난무하는데 이 역시 그러한 욕망의 표출일 거다. 대부분 말에서 끝나는데 반해 '이세이 사가와'는 정말 먹어버렸지만.


두 발 모두 진창에 담근 채 질척이며 걸어가는 것은 욕망에 충실한 것인가. 이것을 두고 욕망과 삶의 합일로 보는 것은 타당한가. <감각의 제국>에 관하여 '예술-외설' 시비가 끊이지 않고 '이세이 사가와'가 그러한 행각 후에도 살아남아 일본 tv 토크쇼에까지 출현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라는 것이 명확한 듯 보이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욕망의 끝을 보았는가. 죽고싶어 죽은 자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가.


수천 년 전에 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아 고행을 감행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욕망은 근대적 구조로도 결코 제어될 수 없으며

앞뒤 재지 않는 그 욕망의 실현으로도 결코 채워질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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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썼지만 지금 읽어 봐도 고심이 녹아 있는 글이라 자꾸 보게 된다.

엽기적인 실화의 내면을 들여다 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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