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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감 Sep 05. 2023

첫만남

수능 만점자의 학교 5편

두 번째 인사는 먼저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억누르며 용기를 냈는데, 다행히 유안은 아무렇지 않게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정적.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채서는 냅다 질렀다.


"야아아 미안했다아아아!"

"풉...!"


크고 비장한 인사에 복도에 메아리가 울렸다.

첫인상 때문에 마음 속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유안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결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채서는 속전속결로 자신의 오해를 설명하고 인사를 무시했던 것에 대해 사과했다.


"해치웠다는 표정인데?"

"...!"


뜬금없는 인사로 당황시키고, 비어있는 자리로 미안하게 만들고, 소극적인 자신을 끄집어내서 사과까지 하게 만든 서유안은 생각보다 평범한 19살 남자애였다. 순서가 어긋나버린 자기 소개를 하고,  할 말이 없어서 멀뚱하게 서 있는 채서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면서 가방을 걸어주는 것은 왜 그의 주변에 사람이 많은지 알게 만들었지만.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채서의 말에 유안은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작년부터는 진짜 조용히 살았는데..."

"그전까지 해 온게 있어서 아닐까. 너가 나한테 인사했을 때 다들 엄청 쳐다봤는데."

"진짜? 나는 애들이 보는지 전혀 몰랐어. 미안... 난감했겠다."


눈꼬리가 축 늘어져서 울적하게 바라보는 유안에 채서는 당황하면서 어버버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시선에 조금 민감해서 였을수도?"

"시선에 민감해?"

"중학교 때... 일이 조금 있어서."


부드러운 되물음에 자연스럽게 중학교 일까지 끌고 올 뻔한 채서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시 단속했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안은 다시 화제를 돌려주었다.


"그래도 미안해. 사실 나도 사람들 시선을 별로 안 좋아해서 이해가 되네."

채서는 순간 너가? 라고 되물을 뻔 한 것을 꾹 참고 바라보았다. 유안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소문이 과장되서 그래. 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겸손이다. 유안의 삶은 그 정도가 맞았다.


유안은 순한 아이였다. 말을 안 듣고 뜨거운 주전자에 데여보고 만지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 아이들과는 달랐다. 그는 만지지 말라고 한 번 말하면 절대 만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린 그를 키우면서 한 번도 언성을 높여본 적이 없었고, 아이가 어른스럽다며 주변에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학구열이 강한 부모님 아래서 적당히 좋은 머리와 잘생긴 외모를 타고난 유안은 정석의 길을 걸어왔다. 그에게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유안은 수월하게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어른들에게 예쁨받고,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을 챙기는 삶을 살아왔다.  7살에 태어난 동생은 유안을 보고 자라 순했고, 그를 부모처럼 따랐기 때문에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차분한 남자 아이는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학기 초 선생님의 지명으로 임시 반장을 맡고 친구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일년 내내 반장을 맡는 것이 그에게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진 일상이었다. 전교 회장이 아니었던 이유는 단지 선거에 추천인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급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유안은 부모가 제 아이와 친해지길 바라는 아이였고

아이들이 기꺼이 친해지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딱히 유안이 바랐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부모가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에 유안은 가만히 있었다. 동생의 학교에서 그 애와 만나기 전까지는.




자습실 앞.

남교사와 여교사로 갈라지는 복도에서 채서가 물었다.


"그럼 이제 자습실 다시 오는 거지?"

"응."


유안은 채서의 초조한 표정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이 우리 첫만남인 거다?"

"첫만남?"

"아니 저번에 너가 인사했던... 그거는 무효야. 내 멋대로 상상한 게 아닌 진짜 너는 오늘 처음 만났으니까."

"푸흡... 그래 좋아."

"그럼 1교시 수업 잘 들어가고. 또 보자."


채서는 붉어진 얼굴로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고는 뒤돌아서 척척 걸어갔다.

그리고 저만치 걸어가다가 멈칫하고는 삐걱거리는 걸음으로 다시 돌아와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리고 사람을 내 마음대로 분류하다니, 내가 무례했던 것 같아. 미안해."


이번에는 유안이 멈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곧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치켜 올린 유안은 채서에게 한번 싱긋 웃어주고는 대답 없이 먼저 뒤돌아 걸어갔다.  채서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황당한 표정으로 보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야! 대답은?"


유안은 잠깐 멈추더니 한 쪽 손을 올려 오케이 표시를 만들어 보이고는 다시 풀어 두어 번 흔들었다.

채서는 경쾌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 모습과 왠지 모르게 나풀거리는 그의 머리를 바라보다가 픽 웃으며 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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