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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씨 Jul 07. 2023

미워하는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

사실상 푸념

    최근에 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마음 근육이 단단해져서 웬만한 상처엔 크게 반응하지 않았는데,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사실 누구를 잘 미워하지 않는 편이다.


미워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아깝기도 하고 보통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게 속이 편하다.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성향이 한몫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시기와 질투가 생겼었고 지금도 가끔 부러움의 감정이 들 때가 있지만 시기와 질투로 인해 미움까지 가는 경우는 없다. 현재가 만족스럽기도 하고 내게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채워나가는 과정이 재밌고 좋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미워하는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기대를 잘하지 않는 내가 기대를 하게 만드는 사람.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너무 아끼는 사람들이 내게 미워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만든다.


이 감정은 너무 힘들고 어렵고 벅찬 감정이다. 아마 내게 가장 어려운 감정이 뭐냐고 묻는다면 미움일 것이다. 미움의 대상은 항상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대상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의 문을 여러 개 두었다.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사랑하려고. 여기까진 이만큼 좋은 사람, 여기까진 이이만큼 좋은 사람, 그러다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마침내 마지막 마음의 문까지 내어주고 나면 나는 경계 태세를 모두 풀고 무장해제 상태에 들어간다. 이 사람은 나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여지없이 상처를 받는다. 너무 좋아하니까 너무 크게 받고 너무 좋아하니까 너무 많이 미워한다.


어쩌면 내가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하다. 상처 안 준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문 활짝 열어놓고 잘해주다가 상처 줬다고 미워하다니.


사실 마지막 마음의 문까지 내어줄 때는 상처를 안 줄거라 믿고 열어주는 게 아니라 주는 상처까지 감내할 각오로 열어야 했던 것이었다.


하. 대체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많은 사랑이 있어야 상처에도 감당할 수 있는 걸까. 푸념을 늘어놓는다. 상처 줄거라고 미리 언질을 좀 주지. 상처 줄 거 알았으면 그렇게 안 열어줬을 건데. 원망들도 마구 내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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