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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하나여야 하는 곳은 학교뿐

H.N. 소. 우. 주. 지기의 생각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by 하화건
20210724.jpg 2021년 7월 24일 SNS 게시글

이 글을 만든 날의 일기를 확인해 보니 평범하면서도 무탈했던 그래서 감사한 날이었더군요. 편안한 주말이었고요. 기온은 꽤 높아서 더웠지만요

무슨 일이 있어서 "정답" 얘기를 했는지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날도 동네 뒷산 데크 산책길을 돌았던 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추측 건데 이날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정리된 주제가 "정답" 같네요

제가 쓴 글이니 이러쿵저러쿵할 건 없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게 있다면 글씨체가 좀 더 단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있네요


"정답"하니까 가장 먼저 시험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시험을 치고 나면 시험지를 가지고 맞춰보던 때가 있었죠. 물론 성적이 그나마 어느 정도 나올 때 얘기지만요

시험이란 게 스트레스 그 자체라고 여겼던 학창 시절을 지금 돌이켜보니 그래도 낭만이 있었네요. 추억할 거리도 꽤 있고요

그때는 제게 최대의 난제였는데 살아보니 지금은 시험이 예방 접종 정도로만 여겨지네요. 잠깐 따끔하고 마는 그 정도. 가끔 며칠 후유증을 앓기도 했지만 시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그런 정도의 일로요


생각해 보면 시험 때문에 골치 아파했던 이유는 시험 자체가 아닌 다른 데 있었죠. 시험은 엉덩이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요. 늘 관심을 엉뚱한 데 둬서 성적이 안 좋은 거였는데 마치 시험 자체가 문제인 양 탓하고 있었던 거죠. 거기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공부는 게을리하면서 성적은 잘 받고 싶은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다 보니 최대의 난제라고 착각한 게 아닌가 싶네요

시험이 끝나고 나면 다시금 제대로 된 현실 인식을 되찾았지만요. 학창 시절이 끝날 때까지 바보 같은 상상을 반복하며 시간을 허비하면서 지냈죠.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으로 결과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요행을 바랐으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겨워하며 지냈습니다. 당연한 결과를 보고도 어처구니없이 그때마다 실망을 한 거죠. 우습게도요




얘기가 살짝 옆길로 새고 있는데요. 더 멀어지기 전에 돌아와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시험을 보는 건 정답을 맞히는 행위죠. 얼마나 많이 맞히느냐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고 대우도 달라지는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데, 중학교 다닐 때 시험이 끝나면 전교 1등부터 꼴등까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교내에 공지를 했더랬죠. 시험을 잘 봤을 때는 몰라도 성적이 안 좋을 때는 정말 창피했습니다. 그런 의도에서 만들었으니 당연하죠. 매 시험 성적에 따라 선생님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고, 특별활동 시간에 들어가는 교실도 등급에 따라 달라지다 보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죠. 지금 생각해도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네요




시험을 보고 나서 답을 맞히다 보면 나름 열띤 토론을 벌일 때가 있었죠. 물론 조금만 지나도 정리가 되었지만요. 그럼에도 아주 가끔씩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죠. 선생님들의 실수로 정답이 2개 이상이었던 적이 아주 드물지만 생겼으니까요. 대부분은 억울해도 학교에서 '이거다'하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지만 그때는 그랬죠

정답이 명확하게 하나여야 하다 보니 객관식 문제가 대부분이었고, 주관식으로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채점자의 주관이 혹여라도 들어가서 말이 나올 경우를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 아니었나 싶네요. 주관식도 주로 수학이나 과학 같이 정답이 정확하게 구분되는 데 집중되었죠


솔직히 그러다 보니 그 당시에는 당연히 정답은 하나여야 하고 그래야 서로가 편하다 생각하며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지냈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이요




시간이 지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죠. 눈앞에 펼쳐지는 대부분의 일에 획일적으로 정해진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존재할 수 없었죠.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하나의 정답이 존재해야 한다는 닫힌 생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어려움을 많이 겪었죠. 억지로 무언가를 꿰맞추려고 하니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져 답답할 수밖에 없었고요.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시류에 맞춰 떠밀리듯 상황에 적응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죠


부족함을 채우려고 처세 관련 책을 읽었지만 역시나 저자의 해답만이 답이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게 되더군요.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이 책 저책 되는대로 읽으며 갈증을 해소하려 했죠. 물론 해결된 건 없지만요. 해결은 둘째치고 머릿속엔 여러 사람들의 처세론이 뒤죽박죽 섞여서 더 큰 혼란을 느끼며 지냈죠


답을 찾지 못해 미궁 속에서 헤매면서도 티 안 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을을 엄청나게 의식하며 살았던 거죠. 정말 해야 할 건 나 자신을 아끼고 보듬으며 살았어야 했는데 그런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게 가장 후회가 됩니다.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느낌으로 지냈죠. 육체적인 피로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심적 스트레스는 나날이 심해지더군요. 답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매일매일 커졌고요




간절히 바라니 결국에는 길이 보였죠. 그것도 갑자기요. 조금씩 쌓이던 것이 한순간에 '팡'하고 터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배움 속에서 실마리를 찾은 거죠. 아니 찾아왔습니다. 덕분에 오늘까지 잘 살고 있죠

우연한 기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같이 공부를 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더불어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된 거죠. 오랜 기간 괴롭히던 체증이 '뻥'하고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만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죠. 또 그 상황 속에서 정해지지 않은 해답을 찾으려는 고군분투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고요. 안심이 되더군요. 나만의 어려움인 줄 알았는데 모두가 겪는 일이라 하니 동지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안정되었죠

덤으로 결국에는 답을 찾아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과 투쟁심이 올라오더군요. 모두가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답을 찾거나 만들어갔다는 걸 간접 경험을 통해 알게 되면서 도전의 촉진제가 된 거죠. 여러 번 실패도 했지만 작은 성공들이 쌓여가면서 자신감도 나날이 커졌고요


중간에 고비도 있었습니다. 성공의 경험이 늘 긍정적인 건 아니더라고요. 비슷한 상황에서 예전의 방법을 고집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했으니까요. 예전의 성과가 무위로 돌아간 것 같아 실망하기도 했고 새로운 도전을 굳이 또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귀찮기도 했습니다. 기억력의 한계인지 예전 행동을 잊고 어리석은 선택을 다시 하기도 했고요


다행인 건 고비 앞에서도 한번 시작된 도전이 계속되었다는 겁니다.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었던 거죠. 생각이 바뀌니 당연히 행동도 바뀌었고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 계속 시도하게 된 거죠. 답을 찾지 못한다 해도 걱정하지 말고 부딪혀보자고요. '살아있다는 건 그렇게 사는 거'라면서 살았죠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고군분투 중입니다. 후회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기 위해서요




글을 마치려니 찜찜해서 못 참겠네요. 이 말은 꼭 해야 오해 없이 마무리가 될 거 같아 사족을 붙이고야 맙니다

학교를 다니며 배웠던 것들이 소용이 없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주입식이든 뭐든 그때의 배움이 제게 준 도움은 절대적이니까요. 좋은 건 좋은 대로 별로였던 건 그 나름대로 저의 오늘을 만들어주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학교 다닐 때 인내를 가지고 가르쳐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표제의 그림 "이 이미지는 챗GPT를 이용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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