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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니 Oct 08. 2024

한국인의 60대는 불쌍하다

한국인의 삶을 돌아보면, 50대까지는 끝없는 경쟁과 가족을 위한 헌신으로 가득 차 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동안, 개인적인 행복이나 여유를 누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60대에 이르렀을 때, 남은 것은 겨우 집 한 채뿐일 때가 많다. 그러면 그동안의 노력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의 욕구나 자아를 억누르며 살아온 삶이, 때로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희생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사회적 인정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삶의 중심에 있지만, 과연 그런 노력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 사회에서 '아줌마'라는 단어는 단순히 나이가 든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이 자신만의 이름과 정체성을 잃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불리며 살아가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 결과, 자신의 자아와 개별성마저 서서히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의 결혼 생활에서 여성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스킨십의 부재다. 한국은 스킨십이 인색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 부모가 서로 스킨십을 나누는 모습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한국 부부들이 스킨십을 나눈다 하더라도, 사회적 통념과 문화적 압력으로 인해 아이들 앞에서는 행동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정서는 그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들 역시 자신의 결혼 생활에서 비슷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스킨십의 부재는 부부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을 약화시키며, 결혼 생활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는 섹스리스 부부들의 비율이 높은데 이를 반영하는 농담도 있다. 신혼 3년 동안 섹스할 때마다 동전을 돼지저금통에 넣고, 그 이후에는 섹스할 때마다 동전을 하나씩 빼자고 약속한 부부가 평생 저금통의 동전을 다 비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부부 사이의 스킨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여기서 단순히 섹스리스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 속 스킨십의 부재가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특히 아이를 낳은 후, 부부 간 스킨십의 빈도는 급격히 줄어들고, 시간이 지나 60대에 이르면 스킨십뿐만 아니라 서로의 눈빛조차 주고받지 않는 상황이 흔해진다. 이러한 스킨십의 부족은 단순히 육체적 접촉의 문제를 넘어서, 부부 간의 감정적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긴 결혼 생활 끝에 오히려 서로를 낯설게 느끼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스킨십은 감정과 애정을 교류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이를 통해 부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 유대감이 약화되면서, 부부 관계는 점차 무미건조해지고, 삶의 의미나 서로에 대한 기대감 역시 희미해질 수 있다.

이러한 현상 때문일까? 최근 들어 황혼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24년에는 황혼 이혼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60대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존재감을 상실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자신의 오랜 헌신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결국, 많은 여성들이 이제라도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찾고,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으로 황혼 이혼을 선택한다. 이는 단순히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늦은 각성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가정과 남편, 자녀를 위해 헌신해 온 여성들이 이제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결심이 늦었더라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결혼 후 많은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며, 꿈과 욕구를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간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헌신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 과정에서 본인의 정체성과 행복은 종종 뒤로 밀린다. 사회의 기대와 가족의 요구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은, 진정한 자유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처럼 평생을 경쟁과 헌신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의 60대 경제력은 어떨까? 통계적으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한국의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빈곤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빈곤 문제는 전통적으로 연대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자식들에게도 큰 부담을 준다. 자식들 또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바쁜 가운데, 부모의 노후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큰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부모가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 왔다는 사실은 자식들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더하게 되고, 이는 그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이 된다. 부모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자식을 바라보며 마음이 편할 수 없으며, 부모와 자식 간 서로에 대한 걱정은 결국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반면, 일본의 노인 빈곤율은 약 20%로, 이는 OECD 평균 수준에 해당한다. 일본과 한국은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지만, 두 나라의 상황은 확연히 다르다. 일본은 고령화 문제를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다양한 사회적 안전망과 인프라를 구축해 왔기에 많은 노인들이 비교적 안정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노후 대비가 부족한 상태다. 젊은 시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온 한국의 노인들은 정작 은퇴 후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과 안전망이 미흡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불충분한 국민연금 제도, 급격한 고령화와 저출산, 비정규직과 자영업의 높은 비율, 그리고 가족 부양 체계의 변화와 주택 문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삶의 질과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노후 빈곤은 단순히 노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중요한 사회적 도전 과제다.

한국인의 10대부터 50대까지의 삶은 곧 한국 사회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는 한국인의 강한 위기 의식과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 한국인의 무의식에는 언제나 위기 상황에 대비하려는 경향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자주 비교하고 걱정하며 끊임없이 경쟁하려는 태도로 나타난다. 이러한 심리는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은 오랜 세월 동안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수많은 침략과 압박을 견뎌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위기 의식이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과거와 같은 위협에 직면한 약소국이 아니다.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뿐만 아니라, 문화적 영향력과 외교적 위상까지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K-콘텐츠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증대시키고 있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의 적극적인 외교 활동과 혁신을 통해 한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 배경이 한국인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것은 사실이지만, 주변국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억눌릴 필요가 없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이유는 주로 주변 강대국들과의 비교에서 기인한다. 이제는 한국도 스스로를 비교하는 태도를 내려놓고, 더 여유 있는 삶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경제 성장과 GDP에만 집착하며 국가의 성공을 평가할 것인가? 이제는 경제적 성과를 넘어서 삶의 질과 행복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때다. 국가의 성공은 단순한 경제적 지표로만 측정될 수 없으며, 삶의 질, 사회적 안정, 그리고 개인의 행복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특히 삶에 대한 태도에서 여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많은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도 칭찬보다는 "자만하지 말라"는 말을 더 자주 한다. 이는 아이가 더 나은 성과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정작 아이에게는 성취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기회를 주지 못하며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 또한, 아이가 실수를 했을 때, 예를 들어 접시를 깨뜨렸을 때 부모의 첫 반응이 "괜찮냐"는 걱정보다 "왜 조심하지 않았냐"는 질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반응은 아이에게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며, 아이는 점차 실수를 피하려고만 하는 공포 속에서 자라나게 된다. 더 나아가, 아이는 사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먼저 배우게 되면서 도전적인 삶 대신 안정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엄격함은 결국 삶의 여러 방면에서 창의성을 억누르고, 새로운 시도를 꺼리게 하며, 스트레스와 불안감까지 유발한다.

이러한 엄격함과 부담감은 명절과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반가움보다도 음식 준비와 손님 접대에 대한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친척들 간의 비교가 시작되면, "아직도 취직 안 했어?", "결혼은 언제 할 거야?", "아이 성적은 어때?"와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결혼, 취직, 자녀 교육이라는 사회적 기준으로 작용하며, 가족들 사이에 경쟁과 비교를 유발한다.

결국, 명절은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의무와 평가의 장으로 변질되며, 이는 가정 내 엄격함과 사회적 압박이 결합되어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준다. 또한, 한국인들은 여행을 떠날 때조차 진정한 휴식보다는 ‘뽕을 뽑으려는’ 마음으로 빽빽한 일정을 계획해, 최대한 많은 명소를 방문하려 애쓴다. 이러한 여행은 때로 진정한 휴식을 위한 시간이 아닌 또 다른 ‘업적 달성’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인의 열정과 성실함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나친 경쟁과 비교,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문화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게 만들지만, 그 과정에서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는 일이 많다.

평생을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60대에 이르러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공허함과 행복하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령 노후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 남을 위해 살아왔고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온 60대가 과연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한국의 60대 분들 중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며,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곤 한다.

서양의 많은 국가들에서는 60대가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여겨진다. 이는 그들이 이미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며, 자신의 관심사나 취미를 즐기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개인주의적 문화가 발달해 있어, 자신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퇴직 후에는 사회적 활동이나 봉사, 취미 생활 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한 삶의 일부로 여겨진다.

서양의 60대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가족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립된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자유로운 삶의 태도와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반면, 60대의 많은 한국인은 가족에게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거나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며 무력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왔던 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역할이 끝난 듯한 느낌을 받으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삶이 주로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반드시 서양인의 삶을 그대로 모방할 필요는 없다. 다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시간을 갖고 천천히 사유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상태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며, 그것이 결코 문제일 수는 없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의미의 부재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여유를 느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이 없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미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일상 속에서 반드시 의미를 찾아내기보다는, 그저 존재 자체를 음미하며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가벼운 산책, 마음에 드는 음식을 천천히 즐기는 것, 그리고 그날의 작은 기쁨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

만약 공허함이 찾아온다면, 그 공허함은 피해야 할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오히려 공허함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답을 찾기보다는, 질문 그 자체가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내면을 탐구하다 보면, 60대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음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의 시작일 것이다. 행복은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는 작은 순간 속에 숨어 있다. 60대에 이르러 한국인은 비로소 일상의 소소한 기쁨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결국, 60대라는 시기는 더 이상 과거의 성과나 미래의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단순한 순간들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지혜를 배워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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