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경험과 지식이 쌓이면서, 우리는 세상에 점차 익숙해진다. 하지만 이는 단지 지식이 축적되었다는 의미일 뿐, 배움에 대한 욕구가 사라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알게 될수록 더 깊이 있는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탐구심과 호기심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는 마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한 사람이 그 끝을 알고자 하는 욕구와도 같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미지의 영역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서도 호기심을 유지하려면, 의도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고양된 지적 욕구를 통해 배움의 길을 지속적으로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호기심은 시간에 구속받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자산이자, 존재의 심오함을 탐구하는 영원한 동반자다.
호기심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최근 MZ세대를 보면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여러 가지 레슨을 받으며,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는 확실히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가끔은 그 활동들이 진정한 내적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마치 SNS에 올릴 사진을 위한 행위처럼 보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통해 호기심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책을 읽자"라고 말하고 싶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내면을 성찰하고,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는 지적 힘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진정한 의미와 성장을 추구하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한다. 진정한 호기심이란 결국, 내면을 탐구하고 세상의 복잡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독서는 물론 중요한 활동이지만, 독서 접근 방식도 중요하다. 나는 먼저 독서 습관을 형성하고, 그 후에 호기심을 키워 다양한 장르와 주제로 확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심오한 주제를 다루는 책을 읽게 되면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를 잃기 쉽다. 한국인의 독서 거부감은 대체로 10대 시절의 강한 학업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이 독서의 유익함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습관으로 만들기 어려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책을 빠르게 완독해야 한다는 압박을 주며, 처음부터 무리하게 독서를 시도하다가 쉽게 지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책과의 거리감이 생기고, 독서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인간의 뇌는 독서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뇌는 본래 생존을 위한 위험 감지와 에너지 절약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독서는 생존 본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에 뇌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독서 활동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독서 습관을 형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니라, 무의식이 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새로운 시도나 변화에 대해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활동인 독서와 같은 일에는 자연스럽게 저항감을 느낀다. 독서를 시작했을 때 피로감이나 집중력 저하를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무의식적 방어 기제 때문이다.
그러나 무의식이 독서를 방해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독서를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즉, 독서를 강제로 계속하기보다는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멈추면, 무의식은 점차 독서에 대한 저항을 덜 느끼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독서가 자연스럽게 습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독서가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면, 독서를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독서가 필수적인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독서 습관을 형성하려면 무리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처음에는 독서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서, 1년에 책 한 권 읽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몰 스텝'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 방법은 하루에 단 한 페이지만 읽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습관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반드시 하는 양치질과 연결해, 양치질을 끝낸 뒤 바로 책을 읽는 루틴을 설정했다. 이렇게 작은 성취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독서 습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페이지였던 것이 점차 두 페이지, 열 페이지로 늘어났고, 어느새 하루에 두 시간씩 책을 읽게 되었다. 독서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는 1년에 180권을 읽을 수 있었는데, 특히 나는 책을 반복해서 읽고 독후감을 길게 쓰는 방식을 택했다. 시간을 계산해 보면 이는 일반적인 독서량으로 1년에 약 300권을 읽는 것과 같은 분량이다.
이런 접근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독서 습관을 형성했고, 더 나아가 독서를 통해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동기 부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서를 통해 해결하고 싶은 문제나 개선하고 싶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독서 습관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동기를 명확히 한 후에는, 유튜브와 같은 매체를 활용해 독서의 유익함을 설명하는 영상이나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독서의 유익함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독서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다면, 독서는 더 이상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독서를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여겨,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서는 본질적으로 즐거움과 깊은 성찰의 경험이어야 한다. 단순히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와 삶의 상황에 맞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독서가 된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가치를 주는 것은 아니며, 어떤 책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서는 그 자체로 개인의 내면과 상황에 맞는 여정이어야 한다.
한국은 문맹률이 매우 낮은 나라로, 대부분의 국민이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율은 국제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2023년 기준,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43%에 불과하며, 종이책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성인 중 32%만이 1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성인 3명 중 2명이 종이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의미로, 독서 문화가 상당히 위축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문맹률이 한국보다 높은 중국, 태국, 인도 등의 국가들은 오히려 독서 시간에서 더 높은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스웨덴,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독서율은 확실히 낮다. 예를 들어, 독일 성인들은 연간 평균 12권, 스웨덴 성인들은 14권, 미국 성인들은 12권, 일본 성인들은 8~10권의 책을 읽는다. 이에 비해 한국 성인들은 연간 평균 2.3권에 불과해, 독서율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들 국가에서는 독서가 일상에서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의 보편화, 바쁜 생활 패턴, 그리고 독서에 대한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독서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더 나아가,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독서 부족으로 인한 문해력 저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단어의 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오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현상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10대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줄임말 문화는 세대 간 소통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문해력의 저하를 가속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줄임말은 대개 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지만, 이는 단어의 깊이나 맥락을 무시하고 표면적인 의미에만 치중하는 경향을 강화시킨다. 예를 들어, “인싸”나 “핵인싸”와 같은 표현은 단순히 사교성이 좋은 사람을 뜻하지만, 본래의 성격적, 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채 사람을 분류하는 데 사용되면서 의미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줄임말과 유사한 표현들은 점차 젊은 세대들 간에는 자연스러운 언어로 자리잡고 있지만, 세대 간 소통에서는 오히려 간극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어의 올바른 의미를 이해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고, 이는 결국 문해력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문해력의 저하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텍스트보다는 영상이나 이미지 중심의 콘텐츠가 주류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있는 독서와 글 읽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반적인 문해력 감소가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그 영향이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의 문해력과 독서 문제를 단순한 통계로만 보지 않는다. 이 문제는 더 깊은 차원에서 심각하다고 느껴진다. 코로나 이후 다양한 모임 플랫폼들이 잘 되고 있지만 독서와 관련된 플랫폼은 여전히 저조한 참여율을 보인다. 문토, 프립, 소모임, 남의 집, 넷플연가와 같은 다양한 취향 기반 커뮤니티 플랫폼들이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활성화된 것과 비교해보면, 독서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매우 저조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약 10년간 운영된 가장 큰 독서 플랫폼조차도 회원 수가 2만 명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는 독서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독서 플랫폼조차도 참여율 저조 외에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독서 플랫폼은 모임에 참석하려면 상당히 높은 참가비를 지불해야 한다. 모임은 대체로 10명에서 20명 사이의 사람들이 같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한 후, 한 달에 한 번 모여 독서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제와 책의 장르는 다양하지만, 모임은 크게 클럽장 모임과 파트너장 모임으로 나뉜다. 클럽장 모임은 4개월 동안 4번의 모임을 진행하며, 참가비가 평균 35만 원 이상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는 모임을 이끄는 클럽장이 작가, CEO, 연예인, 대기업 팀장 등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거나 유명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독서 토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는 독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킹 기회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독서 플랫폼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처음에는 이러한 이유로 나 역시 이 플랫폼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동시에 독서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이전에 다양한 플랫폼과 모임에 참여해봤지만, 진정으로 독서를 깊이 즐기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근 몇 달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 플랫폼에서 진정한 독서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진정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강제적인 동기 부여를 얻기 위해 이 플랫폼에 참여한 경우가 많았다. 책을 자주 읽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조차도 주로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와 같은 특정 장르에만 국한된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클럽장조차도 독서를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지 못했고, 그로부터 배울 점도 거의 없었다. 네트워킹 기회를 제외하고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깊이 없는 독서 토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물론 신선한 경험 자체로 인해 즐거운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독서나 독서인들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독서 모임과 독서 토론에 참여한 결과, 공감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부족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말하는 문장 구조나 단어 선택, 사고의 논리에서 그 사람의 깊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저 표면적인 사고와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생각은 깊이가 부족했고, 넓은 시각을 가지고 사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다양한 컨셉과 주제의 독서 모임에 1년간 꾸준히 참여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 독서 플랫폼의 본질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플랫폼도 다른 취향 기반 커뮤니티들처럼 네트워킹과 남녀 만남이 주된 목적이었던 듯하다.
이 독서 모임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비즈니스적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또한,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에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잘못된 삶의 방식, 보수적인 마인드, 낮은 자존감, 외모지상주의, 그리고 금전만능주의와 같은 가치관들이 모임 내에서 흔히 보였고, 이러한 태도는 진정한 관계 형성이나 의미 있는 경험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가끔 독서 모임에서 책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력을 자랑하는 클럽장들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자랑이 계속되는 상황에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토론을 기대하고 온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클럽장들이 책보다는 자신의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은, 책이 그저 핑계일 뿐 자기 자랑의 무대가 된 것처럼 보였다. 몇 년 동안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그들이 지겹지 않은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말이 많은 클럽장이나 파트너장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이 거의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이런 경우에는, 독서 모임에서 토론의 본질이 퇴색되고 그저 몇몇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버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차라리 소수 정예로 진행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임에 15명 이상 모여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시간이 충분하더라도 심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플랫폼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인원을 늘리는 것은 당연한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독서 모임의 경우, 인원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그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독서 모임은 원래 소수 정예로 깊이 있는 토론을 진행해야 하는 공간이지만, 인원이 많아지면 각자의 생각을 충분히 나누기 어려워지고, 대화의 깊이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모임에서는 피상적인 이야기만 오가게 되며, 독서의 진정한 가치를 체감하기 어렵다. 또한, 인원이 많아지면 토론의 흐름을 유지하기도 힘들고, 개개인의 의견을 깊이 있게 다루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이 인원 수를 늘려 수익을 올리려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유저들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플랫폼의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던 사람들도, 몇 번의 참석 후에는 자신이 투자한 돈이 아깝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들이 기대했던 의미 있는 네트워크나 깊이 있는 토론보다는, 단순히 공감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표면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독서 플랫폼의 회원 수와 질적 수준을 보면, 아직도 독서 문화가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단순한 숫자 증가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독서의 본질적 가치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문제는 한국 사회 전반의 토론 부재와도 연결된다. 교육 방식의 문제를 넘어서, 사고의 깊이와 다양성을 잃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이 토론의 부재다. 최재천 교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경험한 토론 문화를 바탕으로, 토론이 교육의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꾸준히 강조해 왔다. 토론을 통해서만 진정한 사고의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믿은 그는, 이를 한국 대학에서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경험했다. 학생들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주저했고, 수업은 늘 일방적인 강의로 끝나기 일쑤였다.
최 교수는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토론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를 다양성 부족에서 찾았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획일화된 교육과 문화 속에서 살아왔고,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려웠다. 이는 결국 깊이 있는 사고를 방해하고, 다양한 시각을 받아들이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그는 "숙론"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진정한 토론은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 안에서 진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토론이 종종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식의 논쟁으로 변질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관점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토론이 자리 잡기 어렵고, 이는 결국 개인의 사고 발전을 방해하게 된다. 최 교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경험했던 토론 문화를 그리워하며, 한국 사회에도 이러한 문화가 뿌리내리길 희망했지만, 그 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의 부족과 토론의 어려움은 독서의 부재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끊임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멈춰 서서 생각할 여유를 찾기 어렵고, 유튜브와 같은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미디어에 쉽게 중독되기 때문에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사회적 통념을 되짚고,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도구는 바로 독서일 것이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서, 사고의 틀을 확장하고 다양한 관점과 문제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독서를 하지 않은 이들은 종종 어릴 적 교육에서 길러진,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단 하나의 정답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니며, 수많은 해답과 그 해답들 사이에서 끝없이 연결된 새로운 문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깊이 있는 성찰과 독서는 우리에게 이 복잡한 세상에서 단일한 답을 찾기보다는, 다양한 해석과 그 해석들 사이의 무수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이 '세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우리의 삶은 타인과의 관계와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독서는 바로 그 관계성을 확장시키는 매개체다. 우리는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과 사상, 그리고 감정을 접하고, 우리의 한정된 세계를 넘어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독서가 결여된다면, 개인은 그만큼 자신의 사고를 넓힐 기회를 잃게 되고, 이는 곧 인간 관계와 사회적 맥락에서의 성숙을 저해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독서가 부족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사고가 편협해지고, 통합적인 발전은 어려워지며, 다양성의 결여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다양성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인간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창의성의 원천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진리를 향한 자유로운 탐구가 없다면, 사회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그에게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관점의 충돌과 대화를 통해 비로소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독서는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접하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독서 없이는 사회적 사고와 진리 탐구 역시 정체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독서와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는 정답을 찾으려는 사고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지적한 '주체적 사고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들뢰즈는 인간이 사유할 때 기존의 구조와 질서 안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사유는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해석과 연결된 무수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이 복잡성을 이해하고, 열린 사고의 힘을 기를 수 있다.
결국, 독서가 결여되고 다양성이 억압된 사회는 고립된 사고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회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독서와 토론은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깊은 자아 성찰과 공동체의 연대를 이끌어낸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만이 진정으로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