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그림자와 빛

사라진 마음의 결

by siya

당신이 떠난 뒤, 나는 오래도록 그림자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만 생겨나는 것인데,

아무래도 당신이 남긴 빛이 아직도 내 안에서 희미하게 살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라진 마음의 결이, 손끝으로 스치듯 남아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듯 흔들렸습니다.


나는 그 흔들림을 따라, 천천히 당신이 남긴 어둠과 빛의 경계를 걸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말들,

말하지 않았던 마음들,

늦은 밤공기 속에 흩트려지는 호흡처럼 퍼져 있던 체온이 낡은 페이지처럼 구겨진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그림자는 늘 부드럽게 나를 이끌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닿던 자리,

웃음이 번지던 순간,

내가 외면했던 작은 진실들까지

모두 그림자의 결 속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결을 손바닥 위에 올려 조심스럽게 펼쳐보았습니다.


그러면 기억은 언제나 빛으로 번졌습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던 순간들은

어쩐지 늘 유난히 환했고,

내 어깨 위로 손을 올려주던 당신의 체온은

햇살처럼 따뜻해져 다시 나를 감쌌습니다.


한때는 이 빛이 영원할 거라 믿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하루를 밝혀줄 수 있을 거라고,

서툰 마음이라도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을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빛은 언제나 가장 섬세한 틈에서부터 깨져나갔습니다.


불안과 기대가 부딪히며 생긴 작은 금,

그 위를 가볍게 스쳐 지나간 의심의 먼지,

멈춰버린 대화들,

서로가 서로에게 미뤄버린 감정들.

결국 그 틈으로 바람이 스며들었고

우리는 천천히 흔들렸습니다.

빛은 점점 흐려지고,

그 자리에는 그림자가 길게 눕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그 그림자를 미워하지 못했습니다.

그림자는 당신이 있었던 증거였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했다는

아주 조용한 증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림자가 없었다면, 빛도 없었을 테니까.

내게 남아 있는 것이 그림자뿐이라 해도

나는 그 어둠을 조용히 껴안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완전히 멀어진 날,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당신의 형태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그마저도 바람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끝내 붙잡지 못한 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결국 빛과 그림자를 함께 품는 일이라는 것을.


밝음만을 쥐려 하면 오히려 더 많은 어둠이 새어 들어오고, 그림자만 보려 하면 빛을 놓쳐버린다는 것을.


나는 이제 더는 당신의 그림자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림자가 사라진 자리는 텅 빈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빛이 들어설 공간이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결은 언젠가 다른 빛을 만나 더 온전하게 완성될 것 같아 슬픕니다.

그게 온전한 것일지도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줌의 그림자와 한 줄기 빛을 마음에 담아 조용히 앞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사라진 마음의 결이 더 이상 아픔이 아닌,

조용한 흔들림으로 내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이전 02화02. 미소와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