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버린 시간 속에서
빛은 언제나 가장 먼저 사라지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시간의 한가운데서,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배웠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남아 있던 마지막 빛은
어느 순간 말없이 꺼져 있었고,
그 자리에 잿더미만 고요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사랑이 타고 남은 것은 언제나 재였습니다.
불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얼마나 환하게 세상을 밝혔는지는
그을린 흔적을 보아야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한동안 그 잿더미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손을 대면 부서질 것 같았고,
숨을 불면 흩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나의 시간도 그렇게 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였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 우연히 겹친 시선,
서로의 하루를 묻는 조심스러운 질문들.
그 불씨는 어느새 커다란 불꽃이 되어 타올랐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불이 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빛은 눈부셨고,
나는 그 눈부심 속에서 방향을 잃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모든 것을 밝히는 줄 알았고,
그 안에 그림자와 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당신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이 점점 타들어 갈 때에도
나는 그저 더 많은 빛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결국 불은 스스로를 태워버렸습니다.
너무 많은 기대와 말하지 못한 감정들,
서로에게 던진 무심한 말들이
불길을 키웠고,
그 불길은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기보다
서로를 태워버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남은 것은 검게 그을린 시간과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감정의 재뿐이었습니다.
잿더미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습니다.
끝났다는 사실보다,
정말로 끝까지 타버렸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사랑이 남긴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그 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재는 완전히 차갑지 않았습니다.
아직 미세한 온기가 남아 있었고,
그 온기는 지나간 시간을 부정하지 말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타버린 것은 실패가 아니라,
그만큼 진심이었음을 증명하는 흔적이라고
잿더미는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빛은 언젠가 재가 된다는 것을.
그러나 재가 되었다고 해서
그 빛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빛은 사라졌지만,
그 빛이 만들어낸 온도와 방향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남아
나를 어딘가로 곳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잿더미를 함부로 털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습니다.
타버린 시간마저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사랑은 끝났지만,
사랑이 나를 지나간 흔적까지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았습니다.
빛은 사라졌고,
잿더미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재 위에서도
나는 다시 숨을 쉽니다.
타버린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가올 빛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