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잿더미와 손끝

다시 닿은 온기

by siya

잿더미는 남겨진 것들의 끝이라고 믿었습니다.

모든 것이 타버린 뒤에 남은 것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흔적뿐이라고,

잿더미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 위에서는 어떤 온기도 다시 피어날 수 없다고

나는 오래도록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잿더미 위에서도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걸

당신을 다시 마주한 날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처럼 서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전의 짧은 침묵,

그 사이를 가득 채우던 숨소리,

말보다 먼저 눈빛이 닿던 순간.


그때 나는 느꼈습니다.

타버린 줄 알았던 시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당신의 손끝이 아주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억누르고 참아냈던 숨을 고르며

그 움직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손끝에는 예전과 같은 온기가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온기가 여전히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왜 다시 여기까지 왔는지,

어디에서 얼마나 방황했는지.

그 질문들은 아직 재가 덜 식은 자리에서

너무 뜨거웠으니 더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는 손끝으로

말보다 느린 인사를 건넸습니다.


잿더미 위에 남은 손끝의 온기는

아주 미세했지만 분명했습니다.

그 온기는 다시 불타오르겠다는 약속도 아니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겠다는 다짐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는

조용한 확인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을 다시 바라보며

나는 예전과 다른 나를 발견했습니다.

기대보다는 경계가 먼저 생겼고,

설렘보다는 조심스러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 속에

이상하게도 안정이 있었습니다.

서로를 한 번 잃어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침착함 같은 것.


당신도 변해 있었습니다.

말을 고르기 전에 잠시 숨을 쉬었고,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

천천히 손을 내밀 줄 알게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 변화는 말보다 손끝에서 먼저 느껴졌습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사랑은 언제나 처음처럼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만난 사랑은

잿더미 위에 피어난 작은 온기처럼

쉽게 꺼질 수 있고,

쉽게 상처 입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그래서 더 진심이 된다는 것도.


당신과 나 사이에 남아 있는 재는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더디게 합니다.

하지만 그 재 위를 같이 조심스럽게 걷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한 번 배워본 사람들입니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불을 키우려 애쓰지 않고,

손끝의 온도가 사라지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보며 걷기로 합니다.


잿더미와 손끝 사이에서

나는 작은 마음을 느낍니다.

완전히 끝났다고 믿었던 자리에서

다시 누군가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온기가 여전히 나를 살게 만든다는 사실에

어쩌면 우리는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타버린 사랑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천천히 데워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잿더미 위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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