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묻는 시간
타이틀: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부제: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묻는 시간
우리는 언제부터 멈추는 것을 불안해하게 되었을까. 최근 영국의 젊은이들이 ‘갭이어(Gap Year)’를 선택하는 이유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15년의 학업 끝에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는 대신, 1년간 삶의 멈춤 버튼을 누르는 청년들의 이야기였다. 기사 속 학생들은 그 시간을 ‘낭비’가 아닌 ‘필수’라고 정의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익숙한 불안과 마주하며 멈춰 서고 말았다.
멈춤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 우리는 정해진 궤도 위에서 살아간다. 학교, 대학, 취업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안정’이며, 그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곧 ‘올바른 선택’이라 믿는다. 이 시스템 안에서 공백은 설명이 필요한 결점이 된다. “왜 바로 가지 않니?”라는 질문 뒤에는 '멈추지 말고 계속 가야 한다'는 강박이 깔려 있다.
하지만 기사 속 학생들은 그 전제를 거부했다. 아르바이트로 여행 경비를 모으고, 누군가 짜준 시간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하루를 채웠다. 그들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시간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항상 배우고만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한 학생의 고백은, 다음 단계를 위해 늘 ‘준비’만 하느라 ‘오늘’을 잃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속도라는 안도감 뒤에 숨겨둔 질문들 이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해외 사례로 읽히지 않았던 건, 나 역시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 것’을 유일한 생존 전략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서른 살까지의 내 삶은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와 같았다. 멈추는 순간 대열에서 낙오되고, 저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당시의 나는 내가 능동적인 선택을 하며 산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익숙한 흐름을 벗어날 용기가 없어 남들이 가는 길을 가장 빠른 속도로 따라가는 '가장 쉬운 길'을 택했던 것이다. 방향 없이 빠르게 가는 것과, 잠시 멈춰 방향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임에도, 나는 그저 속도가 주는 가짜 안도감에 취해 있었다.
멈춤은 지연이 아니라 '정리'다 이제 나는 갭이어를 다르게 정의한다. 그것은 성장의 공백이 아니라 인생의 '정리' 시간이며, 뒤처지는 지연이 아니라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의 시간이다. 겉으로는 멈춘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에서는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좌표 수정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이름의 높은 벽 이토록 근사한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로 고개를 돌리면 이야기는 다시 미궁에 빠진다. 당장 내 눈앞에는 진짜 ‘갭이어’를 보내고 있는 내 딸이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그 아이의 멈춤을 응원해야 한다고 되뇌지만, 정작 속마음을 도무지 말하지 않는 딸을 보고 있으면 내 인내심은 이내 바닥을 드러낸다. ‘저 아이도 기사 속 젊은이들처럼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불안에 오늘도 나는 분통이 터지고 만다.
성찰은 고상하지만 삶은 처절하다. 내 삶의 방향은 고민할 수 있어도, 자식의 침묵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결혼 생활이고, 그보다 더한 고행은 자녀 양육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멈추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 비로소 선택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것. 나는 여전히 이 진리를 믿는다. 다만 딸의 닫힌 방문 앞에서 깨닫는 또 하나의 진실은, 그 '선택의 시작'을 묵묵히 기다려주는 부모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아, 오늘도 나는 쿨한 응원 대신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딸의 시간을 존중하기 위해 나 자신의 분노부터 멈춰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