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같은 생각, 같은 후회, 같은 자리. 무한루프 중이다.
타이틀:나는 같은 패턴의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부제:같은 생각, 같은 후회, 같은 자리. 무한루프 중이다.
어젯밤 나는 또 같은 실수를 했다. 정말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고, 말하기 전부터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 말을 꺼내면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시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앞으로의 삶과 연결된 이야기였고, 책임과 부담이 얽혀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못했다. 어느 순간 딸 이야기가 나왔다. 내 마음에서 가장 깊이 아픈 부분, 꺼내지 말아야 할 이야기였다. 나는 또 그 문을 열어 버렸다.
대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그때부터 머릿속에서는 같은 생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왜 나는 또 그 말을 했을까. 왜 나는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왜 나는 알면서도 그 선을 넘을까.
문득 1993년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처럼 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았다. 같은 실수, 같은 후회, 같은 하루. 나는 그 무한루프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반추(rumination)라고 부른다. 이미 지나간 일을 계속 되돌려 생각하며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상태다. 사람은 원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하지만, 반추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같은 생각을 계속 맴돌게 만든다. 나는 밤새 그 대화를 다시 복기했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딸 이야기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생각은 계속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이렇게 생각이 반복되면 감정도 함께 따라온다. 처음에는 분노가 올라온다.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왜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 무게를 함께 나누지 못할까. 그러다가 곧 슬픔이 따라온다. 내가 기대했던 관계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허무함이 찾아온다. 그동안 내가 붙들고 있었던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이다. 마지막에는 지침이 남는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느라 마음이 완전히 소진된 느낌이다.
사람이 큰 실망이나 상실을 경험할 때는 분노, 슬픔, 허무, 피로 같은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mixed emotions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감정들 아래에는 더 깊은 감정이 하나 있다. 상실감이다.
나는 남편에게 단지 해결책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해받고 싶었다. 내가 과민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번번이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마음은 어느 순간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그들을 과대평가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내가 관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믿음이 흔들리는 경험에 가까웠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산다. 가족이라면 이해할 것이라고, 배우자라면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힘든 순간에는 함께 버틸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 그것이 흔들리면 사람은 단순한 섭섭함을 넘어서, 자신이 서 있던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은 묻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믿었을까. 왜 그렇게 많은 기대를 했을까. 그리고 결국 화살은 다시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결국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나였던 것 아닐까. 이 지점에서 사람은 자기 비난의 악순환에 빠진다. 처음에는 상대를 원망하고, 곧 자신을 비난하고, 그 비난은 더 깊은 슬픔을 만든다. 그래서 밤이 길어진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 보기도 했다. 세상에는 더 힘든 사람도 많다고. 전쟁 중인 사람도 있고, 암과 싸우는 사람도 있다고. 그러니 나는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고통은 비교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같은 생각 속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무엇이든 깊이 몰입하는 성격이다. 사람에게도 그렇고, 관계에도 그렇다. 이런 성향은 책임감과 헌신을 만들어 내지만, 동시에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지나갈 일도 나에게는 오래 남는다. 생각이 깊어지고, 감정도 깊어진다. 그래서 마음이 같은 곳을 오래 맴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문제는 단순히 한 번의 실수나 한 번의 대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같은 패턴의 삶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해받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말한다. 그러나 이해받지 못한다. 실망한다. 그리고 결국 나 자신을 비난한다. 이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메타인지(metacognition)와 관련된 경험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한 단계 위에서 바라보는 능력이다. 사람은 자신의 패턴을 보지 못하면 같은 삶을 계속 반복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이 작업은 단순한 감정 배출이 아니라, 같은 삶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작업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한 번쯤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그때 우리는 원망하기도 하고,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허무함 속에 서 있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은 삶이 무너지는 순간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마음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려고 한다.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패턴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같은 생각 속으로 다시 들어갈 때마다,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로 했다.
반복되는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작은 전략
“또 시작이네. 또다시 땅굴을 파고 있네.” → 생각 루프 알아차리기
“아, 또 같은 생각이네.”
감정에 이름 붙이기 → “지금 화가 나 있네.” / “불안하네.”
장면 이름 붙이기 → “오늘은 ‘괜히 말해버린 날’이네.”
미래의 나 떠올리기 → “또 같은 후회를 하고 싶니?”
몸 먼저 움직이기 → 걷기, 창문 열기, 물 마시기
하루 한 번 웃기 → 코미디 영상 보기
그래서 나는 나를 다시 땅 위로 끌어올릴 작은 방법들을 매일 실행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