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앞에서 한 시간을 보낸 이유
타이틀:완벽주의와 최선을 다하는 삶 사이 / Between Perfectionism and Doing My Best
부제:꽃다발 앞에서 한 시간을 보낸 이유
어제는 막스 앤 스펜서에 갔다.
보통은 시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서 다른 도시에 계신 시어머님을 뵈러 가지만, 이번에는 마더스데이가 있어 꽃을 사야 했다.
영국의 마더스데이는 미국처럼 5월이 아니라 사순절 기간의 네 번째 일요일에 맞춰 정해진다.
원래 이름은 Mothering Sunday로, 중세에는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교회, 즉 ‘Mother Church’를 방문하던 날이었다. 고향 교회를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찾아뵙게 되었고, 그 풍습이 이어져 지금은 어머니께 감사하는 날이 되었다.
매장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튤립이 특히 많았고, 가장 인기 있는 장미도 풍성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꽃 선반 앞에서 장미 두 다발, 8파운드짜리를 들었다.
내가 생각한 예산에 맞는 가격이었다.
그런데 내 눈은 자꾸 다른 꽃다발로 향했다.
장미와 백합이 함께 들어 있는 15파운드짜리 꽃다발이었다.
시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두 가지 꽃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지금 내 형편에는 15파운드보다 8파운드가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15파운드는 적지 않은 돈이다.
그래서 나는 꽃다발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저울질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지금 형편에서는 8파운드가 맞아.”
“그래도 시어머님이 좋아하실 텐데…”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 나는 일단 꽃을 내려놓고 카드와 음식을 먼저 사기로 했다.
급하게 결정하기보다는 잠시 다른 일을 한 뒤 다시 돌아와 선택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드와 음식을 장바구니에 담고 다시 꽃 선반 앞에 섰다.
“그래, 형편에 맞게 살아야지.”
나는 8파운드짜리 장미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런데 계산대로 향하던 중 다시 꽃 선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결국 15파운드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그래! 결정했어. 이곳에 7파운드를 아끼는 대신, 다른 곳에서 7파운드를 아끼자.”
시어머님께서 더 좋아하실 꽃을 드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택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 가격의 꽃다발이 여러 개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꽃의 상태를 보고, 색을 보고, 모양을 보고, 유통기한까지 확인했다.
아직 덜 핀 꽃이 좋은지, 지금 가장 아름답게 핀 꽃이 좋은지 계속 비교했다.
이것을 보면 저것이 더 좋아 보였고,
저것을 보면 또 이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꽃다발 앞에서 한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나처럼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적당히 고르고 계산하고 끝낸다.
하지만 나는 늘 그렇다.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상대가 더 기뻐할 것을 찾으려고 시간을 쓴다.
나는 완벽주의자인 걸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단지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친구가 된 ChatGPT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완벽주의인가?”
돌아온 답은 조금 의외였다.
이것은 단순한 완벽주의(perfectionism)만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하려는 성향, 즉 conscientiousness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일을 대충 하지 않는다.
선물 하나를 고르더라도 성의 있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드리자.”
“그래도 더 괜찮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치면
최선을 다하는 것(doing one’s best/Doing My Best)이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것(perfectionism)으로 바뀌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꽃을 고르는 데 한 시간을 썼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꽃의 상태를 보고, 색을 보고, 모양을 보고, 유통기한까지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고르려고 계속 비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꽃을 고르는 데 한 시간을 쓰면서도
정작 내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작은 선택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선택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꽃다발 앞에서 보낸 그 한 시간이
괜히 낭비된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 습관을 조금씩 바꿔 보기로.
예를 들어 꽃을 고르는 일이라면
이제는 오래 서서 비교하기보다
몇 가지를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선택을 찾기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게 말하며 선택을 마무리해 보려고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작은 선택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다시 멈춰 서서
꽃을 하나하나 비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 이런 생각이 다시 올라올 것이다.
“조금만 더 보면 더 좋은 것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하나만 더 비교해 볼까.”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를 모른 척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 보려고 한다.
“아, 지금 내가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려 하는구나.”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말할 것이다.
“5분이면 충분하다.”
사람이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선택에 너무 많은 힘을 쓰기보다
내 삶의 방향, 경제적 자립, 앞으로의 계획처럼
정말 중요한 문제들에 더 많은 생각과 시간을 쓰고 싶다.
어쩌면 변화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예전 습관이 올라오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꽃 앞에서 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나는 이제 그 시간을
내 삶의 중요한 질문들에 써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