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pa와의 만남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Holocaust Memorial Service

by 해피걸

딸을 위한 생일카드와 케이크도 살 겸 시내로 나갔다.

사실 시티라고 표현해야 맞는데, 오랫동안 제주도에 살아왔던 경험으로 시티라는 말보다는 시내라는 말이 입에 배었다. 처음 제주도에서 사람들이 시내 시내 거릴 때 너무 우스웠다. 시내가 뭐냐? 그런데 나도 시나브로 그들의 단어를 쓰고 있었다. 이제는 시티라는 말이 잘 안 나온다.

역시, 사람은 주위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동물이다.


제주도에서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파리바게트에서 구입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영국은 엄마들이 생일케이크를 집에서 만드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형슈퍼마켓에는 간혹 생일케이크를 구입할 수 있는데, 차가 없으니까 가능하지 않고, 그래서 결국 막스스팬서에서 구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몇 개 팔지 않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비바람이 치는 날에 우산을 들고, 케이크를 들고 오다 보니 짜증이 올라왔다.

제주도에 두고 온 모닝차가 그리웠다.


올라오는 짜증을 잠재우기 위해서, 나는 쟈랄드백화점내에 있는 커피숍을 찾았다.

을씨년스러운 날에 마시는 따듯한 홍차는 마음도 안정시키고, 몸도 따듯하게 만든다.


날뛰던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일어서려던 찰나,

나의 옆 테이블에 한 여인이 앉았다.

책이이어준인연.jpg 책(THE MAPMAKERS)으로 만난 인연

그녀의 try에는 로스트비프점심과 체리가 올라간 디저트케이크, 잉글리시 티 그리고 우유 1잔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음식이 담긴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셨고, 신발을 벗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 한 권을 펼치셔서 읽기 시작했다.


식사 한번 하시고, 책 한번 읽고, 다시 식사하시고, 책 읽고. 마치 의식을 치르듯이 반복하시고 계셨다.

그녀의 가슴 위에는 시계가 매달려 있었다.

젊었을 때, 간호사 셨겠구나.

보통 간호사들은 시계를 손목에 차지 않고, 가슴에 매달고 계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서려고 하자,

그녀가 말을 걸어오셨다.

내가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을 때, 그녀 역시 나를 관찰하셨으리라...


그녀: "학생이세요?"

나:"네!? 아니요. 제 나이가 몇인데요^^"

아무래도, 그녀는 나의 옷차림과 배낭 그리고 신발을 보시고 판단하셨으리라...

도시에는 종합대학이 한 개 있는데, 이곳에는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외국인 대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양인들의 서양인들에 비하여 동안이다 보니, 나이를 가늠하시기 힘드셨을 것이리라...

더욱이 그녀가 연세가 어느 정도 있으시다 보니, 그녀의 눈에는 어쩌면 학생들로 비추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와의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나갔다. 족히 30~40분은 했었던 것 같다.

2시가 넘은 레스토랑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St Peter Mancroft Norwich.jpg St Peter Mancroft Norwich

내가 이스라엘에서 6개월 동안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메모를 한 장 건네주셨다.

홀로코스트(Holocaust Memorial Service)를 기리는 교회예배가 있는데, 참석할 수 있으면 참석하라고.

자신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아마도 참석하게 될 것이라고....


손글씨가 참 단정하고 예뻤다.

악필인 나는 손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사회복지사로 근무했을 때, 위기방임 청소년들을 상대로 동영상 만드는 영상 기술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3개월 강사님을 초빙하여 진행했었다. 모든 과정을 빠지지 않고 무사히 마쳤던 청소년들에게 "잘했어요"라는 의미로 손편지와 선물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손으로 쓴 카드를 주고 싶은데, 어떡하지 하다가, 마침 옆에 계신 캘리그라프를 배우셨던 복지사에게 부탁드렸었다. 그녀의 예쁜 손글씨로 태어난 특별한 카드는 마음밭이 차가운 아이들의 마음을 녹였다.

정성이 담긴 손글씨의 위력이라라고나 할까.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복지사는 지금은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그녀의 재능을 활용하고 계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그녀에게 참석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또다시 메모를 건네셨다.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지,

혹시라도 내가 참석하게 되면, 전화하라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주신다?

나는 머리로는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손은 이미 나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있었다.

또다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본능에 충실했다.

그녀는 받아 든 나의 메모를 보며, 나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느냐고 물으셨다.

한글로 쓰고, 발음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다시 써 드렸다.


내가 만일 참석하게 될 시에는 미리 전화를 드리겠다고. 만일에 전화를 드리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아시라고... 나는 그때 이미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변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나는 원래 약속을 정할 때,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하는 사람들을 아주 극혐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영국으로 역이민을 한 후,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신념이나 가치관 생활습관들이 변화하고 있다.

Aftre Holocaust Memorial Swrvice.jpg After the Holocaust Memorial Service within the church

시간이 흘러,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생각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원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계획적인 내가 참석여부를 두고 이렇게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잠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처한 현재의 상황 때문은 아닐까?

마음에 들지 않은 현재의 나의 삶에 대한 자책감속에서, 방전된 신체적 어려움 때문은 아닐까?

더 이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지 않은 건가?

물건에 대해 2년 동안 미니멀라이프를 하고 있는 나는 이제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람관계도 미니멀하려고 한다.


그렇게 고심하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전화를 한참 통화했다.

그리고 나는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참석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서비스(Holocost Memorial Service)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역시 모든 행사는 직접 참석해야 한다.

시공간을 함께 경험해야 한다.

유튜브를 통하여 동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어쩌면, 자칫 비통함이 있을법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서비스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주야장천 내렸던 비대신,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예배가 진행되었던 교회내부로 쏟아져 들어와서가 아닐까?

홀로코스트 메로리얼 서비스를 마친 후, 그녀와 나는 그녀가 추천하는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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