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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남 Apr 01. 2024

뻔한 PT(D+2)

  끝냈다. ‘해냈다’라는 표현보다 조금은 더 과격한 표현이라 골라봤다. 대부분의 촬영이 그러하듯,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촬영 당일까지 식단과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69kg에서 시작한 감량은 61kg에 도달했다. 체지방도 거의 21%에서 16%까지 줄일 수 있었다. 밋밋하다 못해 볼록했던 내 배에 탄탄한 ‘복근’이라는 게 두 개나 생겼다. ‘제로팩’이었던 내 배에 두 개의 복근을 새길 수 있었다. 비로소 ‘난 원래 복근이 없으니까.’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보디 프로필 촬영에 도전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 먼저 얻은 것부터 언급하자면 첫째, 날렵한 턱선. 둘째, 두 개의 선명한 복근. 셋째, 잘빠진 옷태. 넷째, 어떤 일이든 꾸준하고 성실하게 반복하면 해낼 수 있다는 맥락에서 얻은 자기효능감.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자아존중감까지.


  반면 잃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건강. 무리한 상승 다이어트와 빈약한 식단, 과도한 운동은 면역력을 떨어트렸다. 정확히 촬영이 끝나자마자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미친 듯이 재채기를 연발했다. 하루 정도 잠복기를 갖더니, 이틀째가 되는 오늘 코가 맛이 가버렸다. 지금도 쏟아질 것 같은 콧물로 고통받는 중이다. 둘째, 얼굴의 탄력. 체지방이 낮아져서 그런지, 확실히 팔자주름이 더 선명해졌다. 선명해지는 건 갈라지는 근육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한 자릿수의 체지방을 유지하는 운동선수들이 대체로 왜 자기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 이 도전을 통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일은 커다란 쾌감을 주었다. ‘내 몸 하나 바꿀 수 없으면서 어떻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여정이 끝났다. 난 살아남았고, 그건 최근 내 관심사에 들어온 어떤 개그맨의 명언처럼 ‘강하다는 증거’다.


  난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룬 성과를 보물상자에 꼭꼭 숨겨 두고, 틈이 날 때마다 꺼내 먹으면서 위안으로 삼으며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이룬 작은 성공을 발판 삼아 다음 목표를 향해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나의 알량한 자의식을 해체하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유전자 오류를 끊임없이 극복하고 갱신하겠다. 준비하는 시험 합격도, 차기작 완성도, 대작가가 되려는 꿈도, 부자가 되고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바램도 전부 이루고 싶다. 나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발전을 멈추기에 나는 아직 너무 젊다. 


  꽤 거창한 다짐 같지만,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남은 젊음을 아낌없이 불사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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