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혼자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것 외, 홀로 떠나는 여행길에 부담은 없다. 꽤 오랫동안 운전을 해왔는데도 싫은 건 끝내 좋아지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혼밥이 오히려운전 스트레스보다 쉽다. 혼밥러의 최상위 레벨은 고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게 맞다면 극복한 지 이미 오래전이다. 제주 올레길이 만들어진 초기였다. 일주일 휴가를 내고 떠난 길이었다. 걷기 나흘 차였던가? 기력도 딸리고 속이 허한 게 더는 못 걷겠다 싶었던 날,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고깃집을 숙소 주인장이 알려줬다. 고기 먹방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진정한 혼밥러라면, 주변 의식하지 않고 음식 맛에 온전히 뼈져들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난 타고난 혼밥러가 아닌가 싶다. 고기 한 점 한 점 차분하게 구워서 우아하게 집어다 입안에 넣고 눈을 사르르 감고는 므훗한 표정으로 씹는다. 마치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마츠시게 유타카처럼 말이다. 고기의 육즙이 목젖을 적실 때까지~ ㅋㅋ 주변 테이블에서 흘깃흘깃 쳐다보긴 하더라만. 그럴 때 어떻게 한다? 최상위 혼밥러답게 그 시선에 화답하듯 씽긋 웃어주고는 찰지기 고기를 씹어 주면 끄읕~ 것도 우아하게는 무슨, 뭐든 씹어 삼킬 기세로!!! ( '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으르릉 ' )
여하튼 밖에서 혼밥이 부담스러워 끼니를 걸을 만큼 내성적이지는 않다. 실은, 굶거나 배고프면 몹시 예민해지는 편이다. 허기진 위장이 내성적인 성격을 뛰어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배달음식은 딱히 선호하지 않는다. 번거롭더라도 가능하면 테이블 회전율이 빠른 음식점에 가서 먹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재료도 신선하고 상차림이 믿을 만해서, 게다 사람들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4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다 보면, 정겨운 모습을 마주할 때도 있다. 음식을 주거니 받거니 서로 권하는 다정한 이들을 보면 같은 상에 앉아 있는 듯 맘이 푸근해지기도 한다. 간혹 반세기를 넘어 산 까칠한 촉이 발동할 때도 있다. 각자 멀쩡한 손 두고 왜 굳이 먹여 주겠다고 난리인지 알 수가 없네, 알 수가 없어... 오래된 묵은지 부부에게서는 도통 보기 힘든, 허니버터 같은 눈빛에 과도하게 살랑거리는 여자의 말투, 이럴 땐 보통 두 경우지. 느즈막에 새롭게 가정을 꾸린 이들이거나 아니면,,,부,,,류 ㄴ 부적절,, 관계? 뭐 그런 불온한 상상까지 떠올리며 맛나게 고기를 먹는다. 최상위 혼밥러라면 주위를 돌아볼 여유 정도는 있어야 혼밥 좀 했네 말을 듣지, 고개 처박고 음식만 먹어서야 어디 진정한 혼밥러라고 말할 수 있겠나.
코로나 직전 엄마가 떠나셨다. 가뜩이나 맘도 몸도 피폐해진 때에 코로나로 집콕 시간이 길어졌다. 그 사이에 무기력과 우울증은 생활이 되었고 일상은 무너졌었다. 그 와중에도 문득문득 들었던 생각은, 나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지쳐서 잔뜩 짜그라져 있을 때, 사력을 다해 움직인 힘은 그거였던 거 같다. 그 마음으로 어렵게 어렵게 몸을 일으켜 세웠었다. 그럴 땐, 한두 시간 외곽으로 나가 마스크 없이 걷고 돌아왔었다. 그때부터 인 것 같다. 본격적인 혼밥러가 된 시점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으면, 음식점이나 메뉴에 따라서 1인분 주문이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처음엔 1인분에 맞춰 메뉴를 정하거나 음식점을 선택하기도 했었다. 언젠가부터는 이런저런 선택의 문제를 생각 않게 됐다. 일단 시켜 놓고 먹다 남으면 포장을 부탁한다. 아니면 처음부터 용기를 준비할 때도 있다.
친구래도 혼자일 때 내 이런 면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한다. 주어진 상황이 바뀌면 그리 또 맞춰 살게 되더라. 이게 삶이다.
암튼,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장어 집으로 정했다. 상대 젓가락질 신경 안 쓰고, 장어 꼬리는 다 내 거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