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종종, 꽤나 자주, 전업주부는 팔자가 좋다는 글을 접하게 된다. 세미전업주부(프리랜서 겸 돌봄노동자)로서, 이런 글들은 쉽게 간과하기 어렵다. 괜히 더 깊게 들고파며 읽게 되는 것이다. 과연 왜 그렇게들 말하는 걸까. 논리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첫째,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 쓴다. 둘째, 맞벌이의 고통 없이 아이 혹은 가정 생활에 집중할 수 있다. 셋째, 돈 버는 일보다 훨씬 쉽고 간단한 일들, 그러니까 가사노동만 하면 된다.
흠. 놀랍게도 하나 틀린 말 없다. 결혼하여 종일 가사노동자가 되어보니 실제로 그렇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이 가능하다. 직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온전히 내 아이와 가정에만 몰입한다. 빨래 개기와 청소하기, 밥 짓기는 고도의 지적능력이나 고학력, 창의성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이 간질간질할까. 아마도 한 마디는 꼭 보태고 싶어서이리라. 바로 이것이다: 전업주부에게는 집이 없다. 전업주부에게는 쉼과 리프레시의 공간, 진정한 의미에서의 회복과 충전의 공간인 집이 없다. 집은 그녀 혹은 그의 일터이자 작업장이다. 집이 없는 전업주부는 그리하여, 쉬기 위해 나가야만 한다.
나가 보았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잠을 매일같이 밖에서 잘 순 없으니까. 결국 돌아간다, 나의 일터로. 쉼의 물리적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니 정신적 공간도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피로의 누적은 우울과 화를 불렀다. 주부의 병이라 불리는 화병의 발생과정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집이 없다는 건 퍽 외로운 기분이다. 집안 어디에서도 할 일을 찾는 나를 보며 더욱 외로워진다. 다름 아닌, 내가, 나 자신이 스스로를 쉴 수 없게 한다. 시지프의 돌굴리기 같은 집안일의 굴레 속에서, 내가 가장 미워하게 된 것은 '착한 주부'가 되어버린 나 자신이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나는 이렇게 변해버렸다. 팔자 좋게 남편 돈으로 호의호식한다는 비난을 들을까봐, 남편이 혹여 억울해하고 기분나빠 할까봐, 누구도 등 떠밀지 않았으나 나는 매일같이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엎드려 머리카락과 먼지를 훔치며 나를 더욱 납작하게, 더더 자그마하게 내리눌러버렸다. 내게서 단 1분의 쉼도 허락하지 않고 빼앗아갔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잃어버린 집을 찾기 위해 작은 도전을 시작했다. 전업주부의 팔자를 예찬(!)하는 인터넷 글들부터 끊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대신 느릿느릿 부엌으로 가 미지근한 물부터 마신다. 휴일에는 새벽에 떠진 눈을 억지로 감고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참아본다. 이 모든 작은 도전들은 내가 내 집에서 다시 주인처럼 살기 위한, 누군가에겐 차라리 희극이고 누군가에겐 어쩌면 극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게 주어진 나만의 생을 더 잘 살아보기 위한 '그냥' 주부의 몸부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