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실패로 버무려진 30대 백수의 밑바닥을 탈출하기 위한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 인스타그램 : @develop_hada
"X플러스 채용팀 OOO입니다. 메일 확인부탁드립니다."
메일함에서 이 제목을 보고 은근 기대감 반 걱정 반으로 내 심장은 이때부터 러닝머신에서 속도 5로 걷다가 갑자기 12로 올린 듯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이걸 보는 순간 "와!! 나도 무언가 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 쓸모 있는 사람이었네." 하며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지나 처우에 대한 사항도 첨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분은 기쁘면서도 착잡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노력했던 취업에 성공했는데 왜 착잡한 기분이 들었을까.
여기서 나도 모르는 미식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X플러스에 지원을 한 당시에 원서 기입란에 '자신이 근무하고 싶은 지점'을 적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에 위치한 지점도 채용을 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기입란에 1 지망으로 적었고, 그다음은 집에서 거리상 가까운 지점을 2 지망으로 적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면접합격 메일에서 합격자배치 지점이 내가 지망으로 쓴 지점들이 아닌 생뚱맞은 거리상으로도 우리 집에서 가장 먼 지점으로 배치가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등장한 미식가는 X플러스라는 음식을 두고 간을 보기 시작했다.
"아 나는 X플러스 지원한 게 우리 동네에 있는 지점에 가서 출근시간, 교통비도 절약하고 집에서 출근하니 돈도 모을 수 있어서지. 생뚱맞게 먼 곳에 간다니까 좀 그러네. 출근시간 1시간이 넘어가는 게 말이냐고."
이렇게 미식가는 자꾸 간을 보면서 내가 합격은 되었지만 안 갈 이유를 찾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했지만 면접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좋은 소식임은 틀림없었기에. 미식가가 간을 자꾸 보고 있었지만 나는 좋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첨부되어 있던 복지나 처우에 관한 파일을 보게 되었고, 어김없이 미식가는 간을 더욱 보기 시작했다. "아. 복지가 나한테는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네? 다 결혼하고 자녀 있는 분들만 해당되네. 그리고 복지포인트도 없고 상여금도 6개월 이상 근무를 해야 근무일 수에 따라 돈을 책정해서 주네. 그냥 몇% 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간을 보며 안 좋은 점을 강하게 합리화했다. 그렇게 있다가 보통 합격을 하게 되면 잡X래닛이나 취업카페 등에 들어가서 검색해서 후기 등을 보지 않나. 물론 나도 확인을 했다. 이때만큼은 서치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내가 정보를 찾는 걸 잘했나 싶을 정도로 잘했다. '이걸 대학교 과제할 때 좀 잘했어야 했는데. 꼭 쓸데없을 데에만 빛을 발한다.'
그렇게 찾아보니 아무개 소리로 'X플러스는 들어가면 잡일꾼으로 된다. 커리어가 쌓이지 않는다. 연봉상승률이 7년째 없다. 등등' 이런 댓글을 보았다. 역시 미식가는 여기서도 야무지게 간을 보았다.
그렇게 간 보기와 합리화로 인해 나는 "면접 합격"이라는 좋은 소식을 접했지만 왠지 그 회사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이 더 많아진 상태였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 고대하고 고대하던 기회인데, 그리고 30대 공백기 많은 백수에게 기회를 준다는데 왜 막상 취업을 하고 싶지 않은 건지, 뭐가 두려운 건지, 아니면 무기력이라는 놈이 다시 찾아와서 그런 건지, 왜 미식가는 등장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