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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수 Jun 24. 2024

1976년 3월 8일

금식 8일째

지난밤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잠을 자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으니 너무도 힘이 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누워있으면서 이유를 생각하니 해답은 쉽게 나왔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적응된 몸 덩이가 흙바닥 위에 비닐을 깔고 만든 잠자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주일 전 처음 여기 왔을 때 바로 이 자리 차가운 흙바닥 위에서 잠 못 이루던 그 밤을 육체는 기억했었다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침 햇살이 문틈으로 스며드는 새로운 월요일이다. 이를 닦고 얼굴만 씻고 방으로 돌아왔다.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방이다. 내리고 오르는 게 귀찮기도 하지만 하루 단식을 하기로 다짐을 하다. 한 모금 물도 마시지 않는다는 씨름이다.

월요병은 여기 산 위에도 예외가 없이 찾아왔다. 나는 제 8요일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다름이 아니라 종합적인 일요일을 보내고 피곤한 몸과 마음이 아무 일도 하기 싫어하는 병이다. 시곗바늘은 벌써 정오를 지나는데 몇 페이지의 성경을 읽고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만 하다.


아내에게도 나의 약속 기간이 끝날 때까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당연히 찾아오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누군가가 기다려진다. 마음은 아니라 하면서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향하는 산의 입구가 잘 보이는 양지바른 담벼락을 기대고 서 있는 내 모습이다. 두 마음이 나를 휘청거리게 하는 중이다. 


요즘 맥박은 금식 초기와는 다르게 극히 미약하다. 1분에 겨우 60을 헤아릴 정도다. 그럼에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 기분도 좋다.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일이다. 역시 단식은 어려운 알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지낸 하루였다. 입술이 하얗게 되고 혓바닥엔 흰 가루가 덮인 것처럼 됐다. 입안이 쓰기는 왜 그렇게 쓴 지 견딜 수 없다. 두 다리는 어제까지만 해도 움직이며 걷고 활동할 수 있었다. 오늘은 정말 움직이기조차 힘이 부친다. 오후에는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예정에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결코 오지 않는 잠이다. 괴롭기만 할 따름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엎치락뒤치락할 뿐이다. 단식의 시도는 나의 지나친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되어 접기로 하다. 하루 종일 물을 안 마셨으니 오죽이나 물이 그리운가. 몇 번씩이나 산 계곡에 갔다가 입술만 적시고 그냥 돌아서는 발걸음 너무나 딱하기만 하다. 


내일부터는 다시 물을 마신다.


캄캄한 방 안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목사님.", 공동체의 가족으로 영진 엄마인 O 씨의 목소리다. 나는 석유등에 불을 붙이고

"들어오십시오." 하며 문을 열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손을 잡아줬다. 따뜻한 감촉을 느꼈다. 오지 말라고는 했으나 어찌 반가운지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가 자리를 비운 날부터 공동체 가족들은 매일  저녁 모여 기도회 시간을 갖는다."라고 했다. 나를 감동시키는 말이다. "궁금하고 건강이 걱정이 돼서 왔는데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자 숙소로 가십시오."

 

꿈을 만드는 나라로 밤의 여행을 떠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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