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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an 10. 2021

낭만을 찍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잘 찍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나이를 먹고 살이 찌면서 예전과 비교해 못나게 나와 인물사진은 거의 찍지도 않는다. 멋진 풍경을 담을 때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못 나오는 경우가 많아 거의 인증샷을 찍는 정도로 한 두 컷 찍고 만다. 차라리 그 시간에 아름다운 것을 오래 바라보자는 마음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할 때도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야기하던 즐거운 분위기가 끊길까 사진을 찍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이걸 어디 자랑할데도 없는데 찍어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찍지 않았다. 또 요즘은 인생샷찍는 것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동시에 수십 번씩 울려대는 셔터 소리가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멋진 장소에서도 슬쩍 보고 지나치거나 조용히 나만 간직할 배경만 찍곤 했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의 사진 폴더에는 일에 관련된 사진만 있지 나의 추억거리가 별로 담겨있지 않다.


3일간 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인스타그램에는 온통 눈에 관련된 사진이 도배되었다. 마치 러브레터의 한 장면인처럼 영화 같은 사진들이 마구 쏟아졌다.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신나게 겨울 활동을 즐기는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그런 지인들의 예쁜 사진을 보면서 같은 눈이 오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춥다고, 운전하기 힘들다고, 맨날 보는 눈이라고하며 그냥 집에만 콕 들어가 있었다. 문득 과연 아름다운 것들을 내 눈과 머리에만 담아놓으면 그만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들에게 자랑을 하기 위해 기록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남의 눈치를 너무 보며 좋은 추억을 놓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사진과 영상이 나의 즐거움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눈사람이라도 하나 만들고, 남편과 둘이 아무도 없는 눈밭에서 굴러보기도 하고, 온통 눈으로 덮여 못나게 된 얼굴을 찍어보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보며 하하하 웃는 모습을 찍기도 하면 그래도 같은 환경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이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자꾸만 낭만과 동심을 잃어가는 것 같다. 눈이 오면 신발 젖을 생각보다 옷이 엉망이 되어도 눈밭에 굴러볼 생각을 먼저 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동심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생각을 먼저 해서 그 동심과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남는 건 무조건 사진뿐이다!”라며 매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친구가 있다. 어떨 땐 극 성스러울 정도로 사진에 집착하는 그 모습이 이제는 사뭇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내가 흘려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붙잡고 싶으나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으니 기록을 해두려는 것이겠지. 그 기록이 나는 글이나 생각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조금은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매 순간을 영화처럼(은 어렵겠지만) 살아보려는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다음번에 눈이 오면 마당에 큰 눈사람을 만들고 남편과 눈싸움도 하리라 다짐해본다. 우리가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놓아야겠단 생각도 해본다. 늘 어린이들의 학예회를 찍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동심과 낭만이 눈 녹듯이 사라져가는 것이 참으로 아쉬운 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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