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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an 25. 2021

이웃의 정

동네에 농사짓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부부가 있다. 친환경농업을 하는 동생들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농사에 뜻을 두고 제주에 내려와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었다.
 친구들과 인연도  신기하게 맺어졌다. 우리 부부가 여행을 떠난 무렵,  부부  남편 (당시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이었다) 역시 세계여행 중이었다. 우리 신랑과 sns 통해 서로 친구를 맺고 서로 만난 적은 없어도 안부를 나누며 지내는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그로부터   , 우리가 제주에 정착하기로 하고 서점을 준비하게  공간을 sns 올렸는데  친구가 사진을 보더니 자기네 동네라고 하며 댓글을 달았다. 넓고 넓은 제주 땅에서 그것도 별로 인적 드문 동네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바로 자기  근처라니! 너무 놀랄 일이었다. 신기한 일이라며 답글을 달고도 한참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제주시내에서 열리는 북페어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로  건너에 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후로 밥도 나눠먹고 같이 운동도 하고 놀러도 가며 이웃사촌의 끈끈한 우애를 다지고 있다.

 친구들은 , 양배추, 단호박 농사  여러 작물을 키우는데  겨울은 양배추 농사만 했다고 한다. 오늘과 내일 양배추 수확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을 듣는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 되는 친구가 다음 달이 출산예정일인데 임신한 몸으로 밭일을 하러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 가만히 있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백 평 되는 그것도 무거운 양배추를 수확하러 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가   같았다. 이럴 때 이웃사촌이 필요한  아닐까. 그래서 남편과 나는 새벽잠을 깨우며 이른 시간 일어나 친구들의 밭으로 향했다. 농사는 아무것도 몰라 운동화를 신고 갔더니 신발이  범벅이 되었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양배추를 캐고 남편은 무거운 자루를 어깨에 지고 나르고 마지막엔 녹초가  듯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힘든  함께 나눌  있는 친구가 제주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동네에서 자주 얼굴을 보고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심심하면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며 나눌  있는 . 이런  때문에 시골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는데 막상 살아보면 쉬운 일이 아닌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자 너무 뿌듯했다.
시시콜콜한 작은 일상을 함께 나눌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단조로운 시골 삶을 얼마나 풍족하게 만들어주는지 모르겠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넉넉하다. 밭에서 얻어온 양배추를 잘게 썰어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며 오늘 함께 흘린 땀방울을 생각했다. 싱그러운 잎 내음을 맡으니 해 뜰 녘 밭에 맺힌 이슬이 떠올랐다. 내 땀방울과 이웃의 따뜻한 정이 섞인 양배추여서 그런지 오늘따라 저녁밥이 더 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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