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농사짓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부부가 있다. 친환경농업을 하는 동생들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농사에 뜻을 두고 제주에 내려와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과 인연도 참 신기하게 맺어졌다. 우리 부부가 여행을 떠난 무렵, 이 부부 중 남편 (당시에는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이었다) 역시 세계여행 중이었다. 우리 신랑과 sns를 통해 서로 친구를 맺고 서로 만난 적은 없어도 안부를 나누며 지내는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우리가 제주에 정착하기로 하고 서점을 준비하게 될 공간을 sns에 올렸는데 이 친구가 사진을 보더니 자기네 동네라고 하며 댓글을 달았다. 넓고 넓은 제주 땅에서 그것도 별로 인적 드문 동네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바로 자기 집 근처라니! 너무 놀랄 일이었다. 신기한 일이라며 답글을 달고도 한참동안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제주시내에서 열리는 북페어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로 길 건너에 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밥도 나눠먹고 같이 운동도 하고 놀러도 가며 이웃사촌의 끈끈한 우애를 다지고 있다.
이 친구들은 귤, 양배추, 단호박 농사 등 여러 작물을 키우는데 올 겨울은 양배추 농사만 했다고 한다. 오늘과 내일 양배추 수확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 되는 친구가 다음 달이 출산예정일인데 임신한 몸으로 밭일을 하러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 가만히 있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몇 백 평 되는 밭에 그것도 무거운 양배추를 수확하러 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가 될 것 같았다. 이럴 때 이웃사촌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래서 남편과 나는 새벽잠을 깨우며 이른 시간 일어나 친구들의 밭으로 향했다. 농사는 아무것도 몰라 운동화를 신고 갔더니 신발이 흙 범벅이 되었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양배추를 캐고 남편은 무거운 자루를 어깨에 지고 나르고 마지막엔 녹초가 된 듯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힘든 일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제주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 동네에서 자주 얼굴을 보고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심심하면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며 나눌 수 있는 삶. 이런 것 때문에 시골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는데 막상 살아보면 쉬운 일이 아닌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자 너무 뿌듯했다.
시시콜콜한 작은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이 단조로운 시골 삶을 얼마나 풍족하게 만들어주는지 모르겠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넉넉하다. 밭에서 얻어온 양배추를 잘게 썰어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며 오늘 함께 흘린 땀방울을 생각했다. 싱그러운 잎 내음을 맡으니 해 뜰 녘 밭에 맺힌 이슬이 떠올랐다. 내 땀방울과 이웃의 따뜻한 정이 섞인 양배추여서 그런지 오늘따라 저녁밥이 더 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