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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랑 Apr 21. 2023

멍하니 TV만 보는 이유

#내가 자주 아픈 이유 #육아우울증 극복기

그런 사람이 있다. 정확히 병명은 없지만 늘 자주 어딘가 아픈 사람... 하도 여기저기가  아프니 주위에서도 이제는 걱정보다는 원래 자주 아픈 사람으로 기억되는 그런 사람.  


나의 이야기다.


기억이 존재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나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갑자기 먹은걸 모두 다 토하고 기력 없이 누워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픈 날은 주로 학교를 안 가는 날이나 방학이었다. 꾀 자주 아팠던 아이였지만 자랑스럽게도 나는 12년 개근으로 초중고를 졸업했다. 학교를 다니는 주중에는 긴장을 하다가 휴일이나 방학 때는 긴장이 풀리면서 아팠던 것 같다.


가끔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이 아이는 왕예민이에요!라고 말 하시면 순간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리게 된다. 옷에 붙어 있는 텍이 늘 거슬려서 엄마에게 떼 달라고 징징 거렸다. 엄마 아빠의 한 마디에 상처받으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기 일쑤였다. 오죽하며 부모님이 수도꼭지라고 부르셨을까... 늘 눈물 바람이던 어린 시절 내가 현재로 시간으로 넘어와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오은영 박사님의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의(?) 아이였다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관찰하시곤 이 아이는 왕예민이네요. 라며 상담을 시작하셨을 것 같다.


그 왕예민이는 집 밖에서 친구와의 다툼 등의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는 상황들, 집안에서 부모님이 격하게 싸우는 상황이 되면 모든 근육과 신경을 빠짝 세웠다. 그렇게 긴장을 유지하다 보면 어느새 쉽게 지치게 되었다. 이런 일의 반복됨에 따라 나의 몸은 아픈 패턴을 반복했다. 매번 그렇게 긴장을 계속 유지할 순 없던 터라 어딘가에서는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본능적으로 선택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tv 보기였다. 집에서 tv를 보는 것에 관대했던 분위기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집에 있는 동안은 tv를 보는 시간이 꾀 길었다. 그리곤 어느 순간 집에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tv 앞에 있었다. tv를 보는 시간 동안에는 나는 방금까지 긴장을 했더라고 모든 기억들을 삭제한 채 멍하니 tv바라보았다. 늘 반쯤 누운 자세로 이완하며 바라보는 그 시간이 나에 주는 유일한 휴식 시간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의 취미를 물어보면 그냥 멍하니 tv 보기.... 는 조금 없어 보이니 영화 보기, 드라마나 예능보기가 되었다. 그 취미는 20대를 거쳐 30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루종일 그날 저녁 10시에 하는 드라마의 뒷 이야기를 기다리며 나의 고민되는 모든 생각들은 접어두고 멍하니 쉴 수 있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첫째를 육아하는 동안도 그 취미는 바뀌지 않았다. 잠을 못 자며 새벽에 수유를 할 때도 전자파가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나도 살아야겠다며 한 손에는 휴대폰을 잡고 새로 발견한 드라마를 정주행 하며 멍하니 아이를 안고 트림을 시켰다. 그러나 둘째를 육아할 때는 처음으로 tv 보며 이완하기 요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tv를 봐도 긴장상태가 이완되지 못하고 답답했다. 화난 감정이 이어지고 점점 깊은 우울감이 몰려왔다. 며칠째 제발 걷기라도 하라며 등 떠미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추운 겨울에 긴 패딩을 푹 껴 입고 차가워진 손을 입김으로 불어가며 동네 길을 정처 없이 걸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그 혼자만의 시간이  어색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음을 끄기 위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걸으면서도 해야 할 집안일과 불안한 감정들로 숨이 막혀 들어왔다. 그러나 계속 걷다 보니 격양된 감정들은 조금 추슬러지고 약간 멍한 상태가 유지되며 몸에 열도 올라왔다. 한 만보쯤 걸은 날은 몸이 피곤하여 자기 전 걱정 고민을 생각할 틈도 없이 금방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완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가게 된다.


걷기에 이어 뜨끈한 샤워기물을 어깨에 대고 한동안 있다 보면 아이를 안으며 뭉쳤던 어깨 근육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 안이 뿌옇게 될 때까지 샤워를 하고 나오면 몸이 개운해지기도 했다. 어디선가 한 정신과 의사분께서 자기 전에 샤워를 하는 것이 혈액 순환에 좋아 수면에 도움을 준다는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혼자 오롯이 아이를 돌보며 시간을 보내다 남편이 퇴근하면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로 따뜻함을 즐기는 그 시간이 또 다른 나의  이완법이 되었다.


걷기도 싫어 웅크리고 있던 어느 날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이번엔 요가학원에도 가본다. Yin yoga라는 생소한 요가 수업을 참여해 따라 해 본다. 기존에 힘든 동작을 버티는 요가 수업 방식과는 반대되게 긴장된 근육을 풀어내며 힘을 빼고 이완한 채 그 상태를 유지한다. 중력으로 한쪽으로 쏠려있었을 장기들과 근육들에게 휴식을 주며 이완을 주는 것이었다. 동작이 끝나면 싱잉볼을 뎅~~ 하며 쳐주는 선생님의 소리에 그 이완상태의 멍함에서 깨어난다.


이완하기는 결국 긴장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동안 나는 TV 보기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는데 걷기, 샤워하기, 요가하기 등등 다른 필살기를 더 얻게 된 것이다.


긴장을 끈을 조금 내려놓고 이완을 선물하며 쉴 수 있음에 감사해 본다.


To. 오늘도 많은 할 일 들에 쌓여 스트레스받는 분들께,


당신의 이완법은 무엇이 있나요? 운동, 샤워, 독서, 종교, 명상 등등 자신의 방법을 찾으며

나에게 이완을 선물해 줄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From 나만의 이완법으로 나에게 쉼을 선물할 줄 아는 나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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